카페에서 작업을 마치고 역시 도민은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 하는 도민과 달리 나는 그다지 밥 생각이 없었다. 메뉴를 고르는 건 언제나 도민이었기에 별 생각이 없다 질문을 받으니 더더욱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도민이 다시 물었다.
넌 뭐 좋아하니?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대충 아무거나 때우는 나에게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다. 옷을 자주 사 입어야 체형이나 이미지에 맞는 옷을 잘 고를 수 있듯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식당도 잘 골랐다. 익명의 공간 속 넘쳐나는 리뷰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렸고, 누군가 추천한 음식도 그저 그러기 일쑤였다. 그런 나보다 더 식욕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b. b와 있을 때 메뉴 선택은 거의 내 몫이었고 그래서 번번이 실패했다.
음... 떡볶이? 떡볶이 먹으러 갈까? 이 동네 소문난 떡볶이 집이 있는데, 나도 안 가봤거든. 좋아요!
이 동네라더니 떡볶이 집은 차로 30분 거리였다. 나와 b로서는 고작 떡볶이를 먹기 위해 이 거리를 이동할 리 없지만 미식가인 도민은 달랐다. 평일 오후 한산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분식집은 한림읍에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테이블에 손님이 다 차 있어 하는 수 없이 벽을 보고 먹어야 하는 1인용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책받침처럼 코팅된 메뉴판을 보는데 뜨악했다.
무슨 떡볶이가 이렇게 비싸.
2인 세트가 무려 31,000원. 어릴 적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는 500원만 내면 종이컵 한가득 담아줬는데...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16,000원이면 화장실 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엽기떡볶이를 이틀간 먹을 수 있었다. 이곳의 메뉴는 오로지 떡볶이와 튀김 세트가 다였고, 2인 세트, 3인 세트, 4인 세트 세 가지 옵션이 있었다. 가격에 놀란 나와 달리 도민은 두리번거리며 메뉴와 건물 내부를 유심히 챙겨보았다.
떡볶이 집을 낼까봐. 누가? 오빠가? 어. 떡볶이만큼 무난한 게 없는 거 같아. 누구나 좋아하고 메뉴도 간단하고. 그리고 의외로 떡볶이 맛집이 별로 없거든. 가격도 이렇게 받으면 매출도 나올 것 같고.
속으로 너무 비싸지 않나 생각했지만 도민은 제법 진지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언젠가 요식업을 하려고 했어. 떡볶이는 투자금도 별로 안 들고 레시피만 잘 발굴하면 되니까. 장사가 얼마나 힘든데. 직장 생활이 그래도 맘 편해.
지난번 공장에서 일했을 때가 행복했다는 이야기도 의외였지만 요식업은 더더욱 상상이 안 되었다. 오랜 기간 카피라이터 생활을 한 탓인지 그에게는 그 직종의 특징이 묻어 있었다. 항상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술과 담배를 즐겼으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또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서사에 집중했다. 예컨대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떡볶이 최초의 기록은 조선 영조 때로 당시에는 오병熬餠이라 불렸으며 떡을 기름에 볶아 만든 음식이었고, 현대식 고추장 떡볶이는 한국전쟁 직후 1953년 신당동에서 마복림 할머니가 처음 고안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세밀하고 계획적이었다. 술 담배를 멀리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며, 계획이 있으면 되려 의지가 꺾여버리는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도민과 이렇게 나란히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행이기에 가능한 의외성 같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한입 크기로 잘린 매끈한 밀떡이 자작한 국물에 폭 잠겨 있었고, 같이 나온 튀김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산뜻하고 바삭해 보였다. 순간 군침이 돌며 떡볶이를 한 점 들었다.
뭐야, 뭐 이리 맛있어.
놀란 나와 달리 도민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번엔 튀김으로 손이 갔다. 튀김옷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동안 먹어본 새우튀김 중에 가장 바삭하고 가장 컸다. 그리고 이번엔 한치 튀김. 건어물로 먹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야들야들할 줄이야. 한치, 너 참 맛있는 애였구나. 음식이 주는 기쁨을 살짝 알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멀리까지 와서 비싼 돈을 주고 먹는지. 사람들이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감동하고 있는 내 옆에서 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