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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다시 보기로 하고 도민은 나를 한담해안길에 내려주었다. 애월리마을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1.2km 길이의 산책로를 걷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은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서다 앉았다 일어나 다시 걸었다. 친구,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이 앞뒤에서 나를 지나쳤다. 그들은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환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내겐 표정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은 지루해 보이거나 우울해 보일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을 뿐인데 누군가 본다면 사연 있는 여자로 생각할 것 같았다.
어쩜 저렇게 예쁜 색이 나올 수 있지.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해가 구름 뒤에 숨어 하늘을 온통 솜사탕 색으로 칠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 다 모여 있다. 분홍, 연분홍, 진분홍, 흰색이 많이 섞인 분홍, 어두운 분홍, 하늘색이 섞인 분홍... 바다로 연결된 시멘트 계단에 앉아 온갖 분홍색으로 수놓은 하늘과 바다를 응시하며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차분한 파도 소리에 귀 기울였다.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양수의 출렁임 같이 포근하고 아늑했다. 저 바다에 잠기고 싶다.
앞에서는 젊은 커플이 모래 위에 자신들의 이름과 함께 하트를 그려 넣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잡거나 부둥켜안거나 키스를 하며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했다. 영원한 사랑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이 떠날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곧 해가 지고 새벽이 되면 머지않아 바다가 그들의 약속을 쓸어버릴 테지. 영원한 사랑만큼 희부연 것이 또 있을까.
이 바다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6일 후면 제주를 떠난다. 무턱대고 선택한 제주행에도 사실 이유가 있었다. 달라지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나와 결별하고 새로워지고 싶었다.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 잃어버린 열정과 생기를 되찾고 싶었다. 그것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현재를 끊어내고자 하는 의지와도 같았다. 오랜 기간 혼자 지내온 내게 b는 교류하는 유일한 상대였고,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란 고작 b와의 관계였다. b와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 것도 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b가 없었다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떠나지 않았을까.
b가 있음으로 불만족스러운 현재에 안주하는 게 아닐까.
풀리지 않는 인생의 정체가 모두 b의 탓인 양 굴었다. 고단한 제 인생이 아버지 탓이라 여겼던 엄마랑 같았다. 엄마는 스스로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아버지 옆에 42년째 기거 중이었다. 아버지 흉을 보는 엄마를 지적하면 엄마는 나도 살려고 그런다고 항변했었다. 행복하지 않은 부모를 보며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나 역시 엄마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b의 무심함은 핑계였다.
사실 b는 처음과 달라진 게 없었다. 5년 전 어느 낡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b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빤히 응시하는 나를 잠시 쳐다본 것이지만,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색채의 사람이라는 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던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걸. 확신에 찬 나와 달리 b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의 적극적인 구애로 관계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b는 무심한 듯한 시선과 말투로 일관했다. 간혹 내가 좋아?라고 물으면 그때마다 안 좋으면 같이 있겠냐며 반문했다. 질문을 질문으로 돌림으로써 본심을 숨기는 그 빤한 속내를 진즉에 알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무심함에 서글퍼져 이별을 선언하고 나면 하루, 일주일, 한 달 혹은 몇 달이 지나 다시 만났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시간 동안 b는 무심한 듯한 태도로 나의 변덕과 예민함을 용인하면서도 내 곁에 있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수준 낮은 나의 글을 읽어주고, 글쓰기를 포기한 이후 웃음을 잃어가던 나를 떠나가지 않았던 단 한 사람. b는 나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