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는 날
잘 살고 있다는 건 무엇일까. 무엇을 통해 증명되는 걸까. 그것은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삶을 지속할수록 산다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내가 무얼 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가는 게 명(命)이라 내버려 두면 저절로 살아질 테지만, 지구의 70억 인구 중 한 사람인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수많은 사람과 연이 닿고 연이 끊어지는 무수한 상황들 속에서 기쁨, 슬픔, 환란, 번뇌, 감동 등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몇 년 전 친구 중 한 명이 했던 말을 나는 아직도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며 산다. 그는 나와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나온 친구다. 편의상 석이라고 부르겠다. 그때 그는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사실은 홧김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A 직원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마음속 앙금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월급을 받자마자 나와버렸다고 했다. 어차피 다시 볼 사이가 아니니 이렇게 박차고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고. 자신이 잘못한 일도 아닌데 속앓이를 할 이유가 없다고 석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나오니 잠시 동안만 후련했고, 그 뒤로는 ‘찝찝함’이 스멀스멀 기어 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석은 한숨이 푹푹 나왔다. 불편할 때 나오는 한숨은 깊이가 남다르다. 복잡한 감정을 한숨으로 털어버리고 싶은 욕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숨을 쉬면서 돌이켜보니, 남아있는 다른 직원들이 걱정됐다. ‘찝찝함’은 ‘죄책감’이라는 친구를 데려왔다. 죄책감은 석이 뱉었던 말들을 주워다가 다시 석의 가슴에 꽂았다. A 직원의 잘못은 금방 잊혔고 그 빈자리를 후회가 대신 차지했다.
“적은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 최대한.”
석이 겪었던 일은 낯설지 않았다. 상황은 달라도 어디선가 나도 분명 겪어 본 일이었다. 너도 너의 잘못은 죽는 순간까지 가져가는 사람이구나. 타인이 준 상처는 분개하는 크기에 비해 금방 잊어버리면서, 자신이 준 상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틈날 때면 떠올리다가 잠자리를 뒤척이는 사람이구나.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마주 보고 앉은 채로 묵혀 두었던 예전 일들을 아닌 척 더듬거렸다.
석과 이야기를 나눈 뒤로 ‘적을 만들지 말자’라는 말은 나의 신념이 됐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도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기운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면 아무 표정 없이 보내야 나의 심신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난 '적을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하며 얼마 전 퇴사한 첫 직장을 입사했다.
다짐을 굳건히 했건만, 나도 사람인지라 바쁘고 고단한 시간 속에서 자주 흐트러졌다.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었기에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말과 행동을 아무런 의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때때로 실패했다. 실패한 날은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내일은 그러지 말자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매일매일 더 나아지는 법을 연습했다. 그 무수한 연습의 시간은 마지막 날에 성과를 보였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자 퇴사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순식간에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출근이라 그런지 출근길마저도 산뜻했다. 항상 누군가의 몸에 기대려는 무의식의 나와 싸우며 지하철을 탔는데, 그날만큼은 잠이 오지 않았다. 분당선과 2호선을 오가며, 내일부터 나는 여기 없는데 여긴 언제나 졸음이 가득 찬 익숙한 풍경을 이어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운하기까지 했다.
출근길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탈 때였다. 왕복 4시간이 걸렸던 나의 출퇴근 경로를 아는 사람들은 놀람을 지나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버스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보는 그 짧은 순간은 정말로 출근길의 낙이었다. 버스가 어느 지점을 통과하면 햇빛이 눈으로 강하게 쏟아져 내렸는데, 매번 그 라인에 앉지 말자고 해도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는 출근길에서 무언가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창문을 살짝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을 만지는 것처럼 이른 아침에 맞는 햇빛과 바람은 참 신선했다.
출근한 뒤 인수인계를 하고, 퇴직서를 작성하고, 기기를 반납하고,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인수인계할 팀원마다 손을 휘휘 내저으시거나 내 손을 꽉 잡아주셨다. 모두 가지 말라는 의미였다. 비교적 짧은 시간 근무했음에도 함께 일한 팀원 모두가 작별을 아쉬워했다. 퇴사 전 일주일은 지갑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면 팀원 중 한 분에게 꼭 메신저가 왔다. ‘나연 님,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요?’ 그럼 나는 누구에게나 ‘저야 너무 좋지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이와 성격 모두 제각각이지만 다들 마음이 따뜻하신 분들이었다.
의외로 나와 각별히 친했던 분은 가장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었다. 첫인상이 무뚝뚝해 보여 나도 모르게 꽤나 눈치를 봤던 기억이 있다. 입사 후 3개월 동안은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퇴근할 때 우연치 않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적이 있었는데, ‘내일 점심 같이 어때요?’라고 갑자기 물어 보셔서 놀랐던 적이 있다. 팀원들에게 인정을 받든 받지 못하든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성실하자던 내 다짐이 결실을 이룬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내뿜는 체취에 시달리며 납작해진 채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도 그날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사회 초년생의 안도감과 뿌듯함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렇게 우린 자주 밥을 같이 먹었고, 연락처를 교환했고, 서로의 앞날에 대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10년 넘게 편집자로 근무했던 그녀는 출판인을 꿈꾸던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두 딸이 나처럼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고 했다. 그 말은 내가 들었던 어떤 칭찬보다 가슴 벅차게 만들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자식을 둘이나 두신 실장님이 유독 나와의 작별을 아쉬워하셨다. 퇴사 날 실장님과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작별 인사를 했다. 인수인계할 때 한 번, 화장실 가다가 마주치면 한 번, 점심시간에 한 번. ‘나연 님은 사람이 참 밝아요. 어디서나 잘할 것 같아. 너무 아쉬워서 어떻게.’
함께 하는 일이 많았던지라 사실 그녀와는 의견 충돌을 겪기도 했다. 세대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직종이라 내 생각이 더 맞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세대에 가까운 나이라고 할지라도, 숱한 경험에서 나오는 그분의 역량에 대해선 철저히 존중해야 했다. ‘적을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되새기며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니 길이 보였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여니 그분도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셨다. ‘적을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겸손의 미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녀를 보면 애틋함이라고 해야 할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아릿한 감정이 느껴졌다. 결혼 생활 시작과 동시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 그녀, 장성한 아들 둘을 좋은 대학까지 보내 놓고도 ‘부모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요.’라며 마음이 쓰인다는 그녀,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글쓰기 참 좋아했었는데’라고 중얼거리던 그녀, ‘마음만 청춘이면 되죠! 얼마든지 도전하셔도 돼요.’라는 나의 다독임에 ‘나는 이제 늙어서...’라며 멋쩍게 웃던 그녀, 단둘이 밥을 먹던 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늙어버렸네요. 여자로 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에요.’라고 무심코 말을 꺼내던 그녀. 그녀의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나를 볼 때마다 짓던 씁쓸한 표정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꿈을 꿀 여유와 기력이 있던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회한이 스며드는 그 표정을. 젊은 시절을 반추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세월을 그리워하고 계신 걸까.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난 뒤에는 항상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도 일과를 마친 후 피곤에 겨워 소파에 앉아 꾸벅 졸고 있는 엄마가. 나의 엄마도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지나간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이밖에도 생각나는 팀원은 많지만 이만 멈추겠다. 마지막 퇴근 때는 다른 팀의 직원들까지 찾아와 작별을 아쉬워하느라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직서를 되찾아오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오다가다가 ‘너무 피곤하지 않아요?’라며 서로의 안부만 묻던 사이였더라도, 이렇게 아쉬워하며 가는 길을 배웅해주니 너무나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거 별거 아니라고. 원래 앞에서는 다 그렇게 아쉬워하는 척하는 거라고.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힐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사람들과 뒤섞인 채 끊임없이 발을 맞추어야 하는 이 공간에서, ‘적을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실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좋은 인연을 양손에 주렁주렁 들고 떠나기란 더 쉽지 않을 거라고. 순간의 감정에서 나온 아쉬움이라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고 감히 누가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처음 꺼냈던 질문을 다시 해본다. 잘 살고 있다는 건 무엇일까. 떠나는 순간이 아름다울 때가 아닐까. 떠나는 순간을 배웅하는 사람의 수가 많든 혹은 한 명이든, 그 순간이 진실로 아름다운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거라고. '잘 살고 있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수만 가지 대답 중 현재의 내 대답은 이렇다. (미래의 나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퇴사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지난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잘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잘 살 거라고 확신한다. 나를 믿는 힘, 세상에서 그것만큼 큰 동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