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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Jun 16. 2024

이제 불 끄고 자요.

냥남매의 치유



두 냥이는 각각  활보하며  앞 발로 번갈아가며  흙 덮는 시늉을 하다가  식빵 굽는 자세로 졸기도 했다. 상자에 폭신한 천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아직 낯설었는지  자기들 취향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한 참을 쳐다보다 거실등을 켜두고 방문을 열어 둔 채 요를 깔고 누웠다. 방안은 거실등 불빛이 새어 들어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상태에서 간간히 사각거리는 녀석들 발자국소리가 ASMR처럼 들렸다. 

‘재들은 언제 자나? … 이러다 내가 먼저 자는 거 아냐? 그냥 저대로 놔두고 자도 괜찮은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앙꼬

벌레공포 & 어둠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버드나무가 많았다.  나는 그 길을 자나치는 게 너무 공포스러워 멀어도 돌아가는 길을 택하곤 했는데 이유는 송충이 때문이었다. 손가락 굵기만 한 것이 길바닥에 꿈틀거리는 것도 무서웠지만 나무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걸음을 뗄 때마다 발자국 앞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송충이를 보며 으악! 하는 비명과 동시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밟히면서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미세한 꿈틀거림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성인이 된 나의 공포대상은 한 가지 더 늘어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 같이 귀신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였다.  정확히는 귀신자체보다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줄곧 깔려있는 어둠이 공포스러웠다. 


나이 먹을수록 무서움이 덜 해진다는 말은 거짓부렁이다.


자취하던 시절 여느 때처럼 불을 끄고 잠을 청하던 순간이었다.

'서걱. 서걱..'

'?'

무슨 소리지??? 잘못 들었나?

'서걱서걱...'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자 내 귀는 마치 소머즈 같은 초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감각기관들이 일제히 곤두섰다. 같은 소리가 들리다 멈추다 다시 들리기를 반복하자 순식간에 공포감에 쌓여 이러지도 저러지 못한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대신 불을 켜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지만 가까스로 스위치를 켜 소리 나는 쪽을 노려봤다. 바닥에 놓인 트랜지스터 뒤에서 꼼짝 않고 있는 검은 생명체는 날개 달린 바퀴벌레였다. 밤새 한 공간에서  같이 있을 생각이 전혀 없던  나는 어이없겠지만 미친 듯이 뛰어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탈출에 성공했고 옆에 살던 (당시 지하 볼링장 여직원들의 숙소) 이웃의 도움으로  바퀴벌레를 잡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부터 불을 켠 채로 잠자는 게  일상이 되었다. 결혼 전까지 자취경력이 짧지 않았기에 주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며  “네가 더 무섭다”라고 핀잔주는 친구, “차라리 작은 스탠드를 켜보라는 제안에도 집 전체 전등을 켜고 티브이를 틀어 혼자라는 생각을 애써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벌레가 무서운 건지, 귀신이 무서운 건지, 어둠이 무서운 건지 헷갈린다.


굿모닝!


눈 뜨자마자 거실로 나갔더니 구석에서 웅크리고 자던 냥이들이 나른하게 하품을 하더니 쫄래쫄래  다가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굿모닝?” 말을 거니 ”냥!” 하고 대답한다.

잘 잤다는 거겠지. 배고프니 밥 달라는 거겠지. 하찮은 800g짜리 생명체 둘이 바꿔놓은 나의 일상은 사료를 주고 감자를 캐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사막화된  모래들과 먼지를 제거하느라 바빠졌다.  

“나원. 요 녀석들이 나를 부지런하게 만드네…” 하루종일 투덜거리면서도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함이었다.

이브

작은 변화 큰 의지


손바닥만 한만한 것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한다. 인간들은 업무를 보고 냥들은 지들끼리 뒹굴기도 하고 편한 자리를 찾아 졸기도 하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나와 두 냥이들만 남는다.

“음… 이제 잘까?” 

거실등을 끄고 방으로 들어와 여전히 방문을 열어둔 채 이부자리를 깐 후 방의 전등을 끄고 누워 눈을 감았다.

‘사각사각……’ 아주 오래전 바퀴벌레의 그것과 같은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때의 공포스러움이 아닌 세상 폭신한  안도감이다. 비로소 불을 끄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냥남매들 덕분에……


남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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