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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May 12. 2024

그렇게 집사가 되어버렸다

우아한 집사

그녀는 둘러메고 온 가방 안에서  작디작은 고양이를 꺼내며 수컷이고, 마지막 남은 한 마리라며 엄마젖을 제일 오래 먹어 건강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암컷 한 마리는 내일 가져다주겠다는 말을 덧 붙였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초고속 집사가 되어버렸다. 순전히 랙돌 탓이다.

느닷없이 왕년 집사출신이라는 직원이 말을 꺼냈다.

"근데.... 그거 아세요? 고양이는 두 마리를 키워야 해요."

"뭐? 제정신이야 고양이 키우는 것도 처음인데  두 마리를? ....  말도 안 돼..."

"정말 이예요. 저를 믿으세요. 제가 적극적으로 지원할게요." 순전히 랙돌 탓이다.  

브리더 역시 본인도 자주 볼 수 있고 안심이 된다며  키우겠다고 하면 펫샾에 보낸 한 마리도 다시 데려오겠다고 했다. 품종묘의 분양가를 알고있는데 두마리를 덥석 공짜로 받기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결국 한마리에 대한 인사치레는 본인이 하겠다는 결론으로 두 마리를 입양하기로 했다.뭐에  홀린 게 분명했다.


"아! 몰라 난 진짜 유난 안 떨 거야. 정~말 밥만 줄 거야. 신경 안 쓸 거라고...... 니들이 알아서 해. 진진짜!! 기본만 챙길 거야."

'정말'과 '진짜'를 거듭 강조하며 어미가 다르다는  배다른 남매 냥이를 맡기로 했다.


어미젖을 먹던 새끼입장에서 보면 엄마와 갑자기 헤어졌을 텐데 사람처럼 작별인사를 했을 리도 없고…

다음 날 펫샾으로 보내졌던 암컷 한 마리도 도착했다. 팔리지 않아 데려온 건지는 몰라도 손바닥 위에서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면서도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모습이 이쁘다고 감탄하기보다 짠하고 측은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앙꼬'



보통 암컷은 5개월 수컷은 4개월 이후에나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시기라고 하는데 너희는 너무 빨리 왔구나… 엄마 생각이 날 테지.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웃거리는 게 딱히 적응은 필요 없어 보였고 무음에 가까운 ‘냐옹’ 소리가 앙증맞아 한참 쳐다보기만 했다.


"근데 애들이 어딘가 1%로 씩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얘는 귀에 털이 생기다 만 거 같고.. 그렇지 않아요?"


어라? 그러고 보니 수컷은 랙돌 특유의 귀 테두리가 갈색 빛을 띠는데  한 쪽 귀가 그냥 핑크색뿐이네?

새끼라 그런가? 점점 자라면서 색이 나오는 건가? 또 다른 암컷은 뱅머리처럼 라인이 잡히는데 왼쪽 눈가로 가면서 라인이 희미했다. 아마 분양받을 계획이었다면 랙돌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따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초고속  입양 덕에 그런 건 아예 생각도 못해 아는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준다고 한 거 아닐까요?" 직원의 말에 내 시선은 새끼냥들한테 향했다.


브리더 입장에서 보면 펫샾으로 보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녀석들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그런 거였나? 그렇다고 해도 아무렴 어때.   (그 뒤로 브리더는 한 달을 못 채우고 퇴사를 했다.)


‘봉제인형’이란 뜻으로 안아 올리면 몸에 힘을 빼고 늘어진 채로 사람에게 몸을 맡기기 때문에 '랙돌'이라

붙여진 거라고 한다. 귀, 코, 꼬리, 발이 갈색이나 초콜릿색, 분홍색을 띠고 흰 배와 다리를 가지며

얼굴에‘V’를 거꾸로 한 무늬를 갖고 있어 일단 외모는 아주 예쁘다.


이브랑꼬! <이브와 앙꼬>

그중 가장 매력적인 건 파란 눈이다. 솜처럼 하얀 피부에 푸른 바다 같은 눈동자를 보면 '홀린다'라는 표현이 무언지 알 것도 같다.


한참을 거실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걸 보니 이곳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사료를 어느정도 줘야 할지 몰라 오는 사람마다 전 집사가 놓고 간 습식사료를  주다 보니 한 마리가 늦은 밤에 움찔움찔거리다 먹은 걸 토해 냈다. 이 모습을 보니 다시 겁이 덜컥 나는 게 어미랑 떼어놓고 앞으로 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지  심란했다. 다행히 그 뒤로 별 탈 없이  준비해 둔 상자에서  자리 잡고  잠이 들었다.


집사 간택 시 그렇듯 하게 준비하는 영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덜렁 와버린 꼴로 스며들듯

한 식구가 될 수도 있구나.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것도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을까?


이 두 아기들을 끝까지 책임져 줘야겠다는 뭉클함이 찾아왔다.

아이들을 통해 내 삶의 변화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반 의심반으로 동거를 시작했고

그렇게 난진짜 집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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