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박 문질러 지웠다
내가 온 힘을 쏟아 내린 글씨들을
이제 볼 수 없어 지우개로 지웠다
지직 종이가 찢어졌다
아무리 지워도 글씨의 흔적이 남아
계속 문질렀을 분인데 찢어지고 말았다
네 모습을 묘사한 글씨도
널 바라보는 나를 표현한 어구도
네게 사랑을 고백한 편지도
남김없이 지우려 했지만
흔적은 그대로
종이만 찢어졌다
할 수 없이 딸깍 흔들었다
내 힘으로 네게 남긴 말들을 지우지 못해
화이트를 꺼내들었다
음푹 파인 흔적들 위로
하얀 액체가 채워져나간다
이젠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지웠다는 기록만 남을 뿐
내가 네게 어떤 글을 남겼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
이제 나만 잊으면 된다
이제 나만 잊으면 된다
난 어쩔 수 없이 화이트 뚜껑을 열고
내 머리 위로 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