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서울 바운더리 인터뷰 04
서울은 한때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도시 중 하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1920년대 초반 25만 명뿐이었던 서울의 인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 1,061만 명에 달했다. 비록 지금은 1,000만 선이 붕괴될 것으로 예측하나, 여전히 취업을 위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20~29세에 이르는 젊은 청년들은 서울로 모여들고 있다.
우리가 이번에 만나 정슬찬 역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그는 ‘도시’, ‘지역’을 콘텐츠화하는 회사에서 온라인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미디어로만 서울을 경험하던 슬찬에게 서울은 미지의 세계였다. 모르는 곳은 가볼 수 없고, 동네를 찾아다니기보단 목적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산지 3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서울이 많다고 한다. 새로운 곳을 방문할 때면, 상점 혹은 거리의 풍경이 눈에 띈다는 그는 이태원과 을지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와의 인터뷰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경험하는 서울에 대한 이미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슬찬의 바운더리 맵
진짜-서울 웹사이트에서 지도를 움직이며 관찰해보세요.
https://jinjja-seoul.com/boundary/person/223
서울에 산 지 얼마나 되었나요? 취업을 위해 서울에 온 건가요?
원래 대전에서 살았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왔어요. 벌써 3년이 넘었네요.
아니요. 취직하려고 서울로 왔어요. 교수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교수님이 “서울에서 일하다 다른 도시로 가는 건 쉽지만, 지역에서 일하다 서울로 올라오는 건 어렵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일단 코딩을 배우기 위해 컴퓨터학원을 등록해 놓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당시 같이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도 많이 서울에 왔어요.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 조금 막막했을 것 같아요. 이전에 서울에 온 적이 있나요?
다행히 친구가 군자역 근처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 친구와 공모전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같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집을 구하고 서울로 이사를 준비했어요. 강남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로 해서, 교통이 편리하고 친구도 사는 구의에 살게 되었어요.
대전에 살면서 서울에 대한 기억은 세 번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고모가 서울에 살아서, 한번 와본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쯤 어머니와 함께 대학교 탐방하러 왔어요. 그때 차를 타고 서울대와 고려대같이 흔히 말하는 명문대를 구경했어요. 그 학교들을 목표로 삼으라는 어머니의 압박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입시 미술을 준비하면서 혼자 홍대에 있는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2~3개월 정도 지내고 대전으로 갈 때는 ‘서울 사람 다 되었네’라는 마음이었어요.
사실 고3의 아들만 서울로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입시 미술의 세계는 원래 그런가요?
지방에서 올라와 있는 친구들이 진짜 많았어요. 이미 고등학교 생활에서 반나절 이상을 학원에서 보내요. 야자는 다 빠지고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거라면, 완벽하게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대전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닐 때 재수하는 선배가 “서울에 가면 잘하는 애들이 정말 많다”면서 그런 애들과 경쟁해봐야 한다고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부모님도 이왕 미술을 시작한 거 제대로 배우라면서 홍대로 보내셨죠. 홍대에 있는 학원에는 서울 사람보다는 대구나 부산 이런 곳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많았어요. 다른 서울권에 있는 학생들은 그 동네 학원을 다니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전에서 살 때, 홍대 말고 서울에 아는 지역이 있었나요?
강남이나 시청 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시청을 구역 혹은 동네로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냥 시청 건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홍대로 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다니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서울에 대해 아는 게 진짜 없었죠. 어린이대공원이나 남산, 강남은 미디어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드라마나 뉴스 등에 어린이대공원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어요.
앞서 홍대에서 2~3개월을 보내면서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서울사람’이란 무엇일까요?
그때는 어려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제가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서울 사람이라고 하기엔 아직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은 것 같아요. 아마도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지금은 서울에 혼자 있고, 가족들이 대전에 살고 있다 보니 그곳에 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집에 있으면 편하고 좋지만, 유학 온 느낌이에요. 아직 잔가지가 주변에 있다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도시를 콘텐츠로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요. 이 회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건축을 전공한 친구와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때 들었던 것이 도시재생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도시재생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삶, 그리고 자기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에 기반하는 것인데, 정부 차원에서 이것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지점이 재미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취업준비를 하다가 도시재생을 콘텐츠로 다룬다는 회사가 있어서 눈에 띄었어요.
옷가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옷을 잘 입듯이, 회사에 다니면서 장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듣고 보면서 서울 혹은 장소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동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잘 움직이지 못했는데, 지금은 막 찾아다니고 알아보는 게 재미있어요. 좀 더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친근해진 것 같아요. 교대 근처 회사에 다닐 때는 답답한 느낌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문화와 문화가 서로 부딪치는 현상이 보이는 게 재미있어요. 서울에 대한 애착이 생긴 것 같아요.
진짜-서울에 참여하신 소감이 어떤가요?
처음에는 제가 서울을 정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믿음이 없었어요. 지역을 기반으로 서울의 이미지를 뽑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서울을 어디로 생각하고 있는지 라는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그럼 어떤 기준으로 뽑았나요?
최근에 자주 가는 곳, 기억에 남는 곳들을 중심으로 찍었어요. 강남은 본격적으로 서울에 들어온 시점이었고, 을지로는 최근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은 곳이에요. ‘서울’하면 생각나는 게 뭔지 고민하다가 홍대를 골랐어요.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강남에서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뭔가 가장 서울 같은 느낌의 장소여서 그런지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사람도 많고, 학원도 있고, 술집도 있고 이것저것 다 모여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강남에 있는 것들이 가장 보편적인 것들이 모여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강남을 잘 가지 않아요.
대신 회사와 가까운 을지로나 이태원을 자주 가요. 친구들이 가양동에 살거나, 동탄에 살거나 다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한쪽에 치우쳐서 만나기보다는 왕십리나, 이태원, 을지로 사이에서 고르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이태원 우사단길 쪽을 갔는데, 너무 좋았어요. 우사단으로 가는 길도 멋있고, 올라가서 동네를 내려다보는 것도 예뻤어요. 무엇보다 작은 가게나 상점들이 아기자기하고 분위기가 좋았어요.
친구들과 만날 때, 장소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일단 친구들도 다 디자인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예쁘고 멋진 곳이어야 해요. 그러면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야 하고, 먹거리도 다양한 공간을 찾아요. 인테리어나 그 동네 분위기라는 것이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 보니 한 곳만 자주 가지 않게 되더라고요.
진짜서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딱 이 동네인 것 같다는 느낌보다는 ‘진짜 서울이 대한민국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은 서울 사람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고 할 정도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만큼 많은 사람을 보고 많은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서울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보다는 여러 문화가 숨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서울의 모든 것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 같아요. 그래서 조금은 모순적이긴 하지만, 너무 서울에 밀집된 것은 아닌지, 다른 곳과 분할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요.
일본과 자주 비교가 되곤 하는데, 일본은 각 지역의 특색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 지역 안에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많이 쌓여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도 비슷하거나,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군대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다양함이 서울에서 똑같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만약 대전에서 친구가 서울 구경을 시켜달라고 이야기하면, 어딜 추천해 줄 건가요?
먼저 이태원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이태원은 언덕길이 많아 지형적인 특색이 있고, 사이사이 골목에 있는 가게들이나 거기서 놀거나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해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또 다른 곳으로는 합정을 소개하고 싶어요. 합정은 홍대와 가까이 붙어 있지만, 조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요. 홍대는 좀 어수선하고 복잡한 느낌이지만, 합정은 그와 달리 정돈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잠실을 추천하고 싶어요. 잠실에 가면 ‘서울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구나’라는 게 느껴져요. 아마도 잠실이 다른 동네에 비해, 가족 단위의 모습이 자주 보여서 그런 것 같아요. 아파트에 사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또 미디어에 자주 등장했던 잠실 타워를 보여줘도 좋을 것 같아요.
에디터 공을채 / 일러스트레이터 조아란
about
진짜-서울은 사람들의 서울을 모으고 기록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입니다.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바운더리 맵'은 각자의 서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7개의 마커로 시각화된 나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브런치에 발행되는 '진짜=서울 인터뷰 시리즈'는 바운더리 맵을 만들어 본 분들을 대상으로 지도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다. 각자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진짜-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