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랑해?”
오늘의 그녀의 배려로 낮 시간에 커피집에 앉아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조금 하기로 했다. 난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좀 하고 그녀는 본인 학원에 연말에 처리해야 할 것들을 준비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가 나에게 대뜸 물어 왔다.
“응? 그럼 사랑하지 그것도 엄청 많이 사랑하지”
“그래? 근데 왜 먼저 사랑한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을 오빠는 하지 않아?”
“응?”
나의 이게 또 무슨 일인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는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의 행동이나 나를 위하는 행동들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왜 말로 하지 않는지 한 번은 물어보고 싶었어….”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을 해 보니 그녀에게 직접 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전에도 그저 그녀가 먼저 나에게 ‘나 사랑해?’라고 물으면 ‘그럼 사랑하지’라고 답한 것이 전부였다. 내가 먼저 직접 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슬이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거 같네. 미안해. 다음부터는 말로 자주, 직접 표현을 해 줄게”
“다음? 언제? 그런 거 없어. 지금 한번 해봐”
“지금? 여기서? 사람들도 많은데?”
“여자친구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사람들 많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만 하고 있는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가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
근데, 왜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혀 끝에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은데.
“막상 하라고 하니까 못하겠는데 ㅎㅎ 판을 깔아주니까 어색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해 주면 안 될까?”
“안돼 웃음으로 때우려고 하지 마. 나도 오빠가 나 사랑하는 거 알아. 나한테 하는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에서 다 느껴져. 하지만 그건 내가 유추해서 느끼는 것일 뿐 직접 오빠가 말로 하는 걸 들은 적은 없는 거 같아”
“그러면 된 거지~ 세상에 말만 하고 행동으로 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면에서는 난 더 나은 거 아니야?”
“응 아니야. 그런 사람들이랑 오빠를 비교하지 말아. 그런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어”
아무리 봐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거 같았다.
“사…. 랑…. 해”
그제야 얼굴이 조금 풀리면서 조금 웃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그거 알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무조건 말을 해야 해”
“그리고 꽤 많은 남자들이 그걸 잘 못하는데 난 내 남자친구가 그러지 않길 바라. 그러니 오빠는 만약 잘 안되면 연습을 좀 해”
“응 알겠어~ 앞으로 연습 많이 해 볼게”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나니 내가 항상 후배들의 연애상담을 할 때 하는 말들이다. 말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상대방이 아냐는 그런 말. 상대방이 독심술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다음부터는 누군가 연애상담을 해 오면 단칼에 거절해야겠다.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정작 스스로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상담이며 참견인지.
그렇게 저녁을 먹고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굿바이 키스를 한 후 그녀에게 용기를 내서 한 마디를 했다.
“I love you”
“미국인이야? 한국어로 다시 해봐”
다시 한번 나를 머쓱하게 하는 그녀, 그리고 스스로 지질하다고 현타 오는 나.
“사랑해~ 잘 들어가”
“잘하네~ 나도 사랑해 조심히 가~”
그렇게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 돌아 서 초겨울의 맑은 밤하늘을 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하루 더 기회가 주어지면 바로 해야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