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크리스마스 선물 받고 싶은 거 있어?”
“음…. 글쎄~ 뭐 필요한 게 없는데, 슬이는 받고 싶은 거 있어?”
“나? 난 뭐 어차피 벌써 오빠가 정해 둔 거 있는 거 아니야?”
마치 내가 이미 주문해 뒀다는 걸 알고 있는 거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먼산을 보았다.
“뭐야? 내 눈을 피하는 거 보니 아닌가 본데? 난 오빠가 미리 생각해 뒀을 거라 확신하고 생각 안 해 봤는데~”
“확신을? ㅎㅎ 사실 정해 둔 게 있긴 해~ 근데 혹시 다른 게 있음 알려줘도 돼~ 그걸로 바꾸면 되니까”
이미 주문을 해서 집에 오고 있는 상황인데 바꿀 리 없다는 생각에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아니야~ 난 오빠를 믿어. 기대하고 있겠어 ㅎㅎ 그러니 오빠도 최대한 빨리 생각을 해봐. 난 오빠 같은 재주가 없단 말이야”
그렇게 투정을 부리는 그녀가 오늘따라 더 사랑스러웠다.
“음… 정말 없는데 그래도 혹시 생각나는 게 있음 알려 줄게”
“근데 크리스마스이브는 평일인데 크리스마스날 만날까?”
“그래~ 어차피 오빠 출근해야 하고 나도 학원에서 꼬맹이들이랑 크리스마스파티 해야 해”
“크리스마스 악몽인데 ㅎㅎ 엄청 힘들겠어”
“맞아…. 다음 주 내내 힘들 것 같아. 그러니까 난 오빠가 줄 선물을 기대하면서 일주일을 버틸 거야 ㅎㅎ”
“기대에 부응해 보도록 하겠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능력들이 있는 반면 꼭 필요하진 않지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들이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흔히 ‘잡기’라고 부른다. 난 그런 ‘잡기’들이 꽤 많은 편인데 그중 나에게 가장 도움 되는 잡기 중 하나가 ‘선물 고르는 능력’이다.
난 가까운 사람들의 선물을 고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도 무언가를 줘야 할 때가 있지만 그것을 굳이 선물이라 부르진 않으니. 특히, 난 여자친구의 선물을 고르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다.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기도 하고 잘 관찰하다 보면 한번 정도는 필요한 것을 언급하게 마련이다.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사주면 된다. 그런 게 전혀 없다면 시즌에 맞게 시의적절하지만 상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템을 선물하면 된다.
겨울이라면 장갑은 있지만 목도리가 없다던지 둘 다 있으면 부츠라던지 등등. 그런 관찰의 결과로 그녀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미 주문해 둔 상태고 도착하면 포장하고 카드를 써서 주면 끝이다.
“그날은 팀원이랑 퇴근하고 무슨 이야기했어? 난 오빠를 만나고 오빠가 퇴근하고 회사 사람이랑 무언가를 하는 걸 처음 봐서 좀 신기했어”
“아 그날? 나도 생각해 보니까 퇴근하고 회사 사람이랑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한 게 2년 전이더라고”
“진짜? 정말 퇴근하면 회사 사람들과는 아무것도 안 하네~ 회식 같은 것도 안 해? 그럼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아?”
“글쎄~ 매일 같이 밥 먹자, 술 먹자 하면 더 싫어할 걸? 아마도~”
“그럴 수 있겠네~ 그래서 무슨 이야기했어?”
“아 그 친구가 퇴사하고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훗날 자기도 창업해 보고 싶다고 하면서”
그렇게 그 팀원 P와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그녀에게 이야기해 줬다. 내가 가려고 하는 스타트업 박대표에게 이력서를 보낸 사실과 그 친구는 아직 내가 그곳에 합류하게 될지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그래서 오빠는 뭐라고 해 줬어? 오빠가 그곳으로 간다고 미리 이야기해 줘야 하지 않을까?”
“나도 그래야 하나 고민 중인데 박대표랑 일단은 먼저 이야기를 해 봐야 할 듯 해. 일단 그 친구는 마음을 굳힌 거 같더라고. 퇴사하는 걸로”
“그렇구나. 직장인들도 이래 저래 고민이 많겠다. 난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 잘 모르겠지만”
“응~ 그래도 직장인이 제일 편해 ㅎㅎ 슬이처럼 자기 사업하면 더 신경 쓸 일이 많지. 크리스마스 파티도 준비해야 하고”
“그 단어 금지야.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 오려고 해”
“아 그러고 보니까…… 아니다”
“뭔데? 말하다 마는 건 절대 안 돼. 빨리 말해. 말 안 하면 난 진짜 삐칠 거야”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체 그녀에게 말을 해 버렸다. 그 친구의 여자친구는 그 친구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는 걸, 그리고 사업을 하려고 하는 걸 응원해 준다고 하더라고.
말하기 전부터 말하고 난 이후의 상황이 너무도 그려졌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 그럼 오빠도 내가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길 원하는 거야?”
“뭐 솔직히 그렇긴 하지. 나한테 슬이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이니까”
“응 나도 응원해~ 하지만 지지는 못해줘.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야. 오빠 팀원 여자친구가 그런다고 나까지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니까”
무언가로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이 정도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