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런남자 Oct 04. 2024

#2020121九

“딩딩 딩딩딩~” 

아침부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아침부터 누가 전화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이건 전화벨 소리가 아닌 알람소리였기 때문이다. 난 주중과 다른 시간으로 토요일에 알람을 맞춰둔다. 일주일 중 일요일만 알람이 울리지 않는 것인데 오늘은 일요일인데 알람이 울렸기 때문이다. 어제 자기 전에 폰을 보다 설정을 건드린 건가?라는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폰 액정에는 너무도 명확하게 오늘을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다. 


‘2020년 12월 19일(토) 08:04’ 


알람을 끄고 폰을 잡은 것도 그렇다고 놓은 것도 아닌 상태로 들고 다시금 침대에 누웠다. 

‘뭐지? 내가 토요일에 무슨 잘못을 한 거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건넨 말이 있었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을 했었다. 마치 ‘근데 뭐 어쩌라고?’라는 투로. 

그럼 내가 그런 생각 자체를 가지고 말을 한 거 자체가 잘못한 거란 말인가? 이젠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도 ‘하루 다시 살기’에 영향을 주는 건가? 


침대에 누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도저히 다시 토요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똑같이 보내도 될까? 어제 안 하려고 했던 말을 하지 말아 볼까?’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해야 하는 일은 하지 못한 채 오전시간을 보냈다. ‘왜 같은 날을 두 번 사는 것도 힘든데 했던 업무들은 좀 남아 있어 주면 안 되는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니 다시 똑같이 해 보기로 어느 정도 맘을 먹은 채로. 


그렇게 그녀를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집에 앉아서 크리스마스 선물과 관련된 이야기, 크리스마스 때 언제 만날 지에 대한 이야기, 학원 파티 등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내가 그 문제의 얼버무림을 할 시간이 되어 갔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니다” 

“뭔데? 말하다 마는 건 절대 안 돼. 빨리 말해. 말 안 하면 난 진짜 삐칠 거야”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그 친구의 여자친구는 그 친구가 스타트업 이직에 대해서 지지해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얼굴 표정이 더 무섭게 변한 걸 발견했다. 처음 말할 때와 사뭇 다른 반응에 나는 더욱 놀랐다.  


“그래서 나도 지지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난 내 방식대로 오빠가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 주고 있는 거야”

“응 알아 미안해… 슬이가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야 아니야”

“그럼 뭐야? 왜 그 팀원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는데? 나랑 그 사람을 비교하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절대 그런 의미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 줘”


눈물마저 글썽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당황하긴 했지만 이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라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들었다. 물론, 누군가와 비교하는 건 잘못된 거지만. 첫 번째 말할 때는 세상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반응을 보였던 것이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걸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비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음에도 저질러 버린 건 나의 잘못이 맞으니. 

이전 08화 #202012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