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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Oct 25. 2024

#20201225

“오늘따라 더 이쁘십니다”

“그래? 맘에 들어?”


만나기로 한 백화점 앞에서 본인도 맘에 드는 착장이었는지 한 바퀴 턴을 하며 밝게 웃어 보였다. 검은색 미드레인지 패딩에 검은색 부츠를 신은 그녀의 모습은 시크해 보이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역시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근데 춥진 않겠어? 버스 타고 다니려면?”

“괜찮아~ 그리고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많이 춥진 않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럴 때마다 항상 고민을 한다. 차를 사야 하는지를. 언제나 같은 결론이지만 항상 고민을 하는 것도 참 미련해 보인다.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보면서 너무 궁금하지만 그렇게 보이긴 싫은 표정이 오묘하게 섞인 눈으로 나와 쇼핑백을 번갈아 보았다. 

“응 맞아 슬이 크리스마스 선물”

“오~ 너무 궁금하지만 조금 참아 보겠어. 지금은 오빠 선물을 사는데 집중해야 하니까”


백화점 앞에서 만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와 달리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적당한 휴일 같은 분주함. 평상시 같았으면 한가한 걸 더 선호했겠지만 크리스마스가 주는 설렘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분 좋음’을 전파하는 듯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내가 여전히 무엇을 사야 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 만 빼면. 다른 건 잘도 정하면서 선물은 참 못 정한다.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 그렇게 마치 끌려들어 가듯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뭐 생각한 거 있어?”

“음….”

“뭐야 생각 안 해 봤어?”

“아니야 생각했어 후드니트 보고 맘에 드는 거 있으면 사줘”

“후드니트? 후드티 말고 후드니트라는 것도 있어? 남자옷도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하네 ㅎㅎ”


그렇게 남성복 층에서 매장을 둘러보던 중 저 멀리서 아는 얼굴의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어? 저놈도 여기 뭐 사러 온 건가?” “누군데?”

“내 친구 그리고 그 옆에는 내 친구 아내” “아내?”

“응 아내 왜?” “아니야”

“응? 뭐야 그 말하는 거 싫어하면서 왜 슬이는 하는 거야?”

라고 말을 하는 순간 그 녀석도 나를 보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의미심장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뭐야? 뭘 그렇게 웃으면서 오시나 ㅎㅎ”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네 ㅎㅎ 안녕하세요 전 준한이 고등학교 친구 윤현수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우연히 오빠 친구를 만나게 되다니 신기한데요”

“아 그리고 여기는 제 아내 되는 사람이고요”


짧은 우연한 만남은 서로 인사를 하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긴 체 헤어졌다. 서로가 분주한 날이다 보니. 

백화점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과 예상했던 소비를 마치고 예약한 식당에 도착을 했다. 오랜만에 일식이 먹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스시집을 무사히 예약했다. 


“선물 고마워 잘 입을게~ 따뜻하게”

“잘 어울려서 다행이야. 역시 내 남자 친구는 옷도 잘 어울려~ 그럼 내 선물을 언박싱해 볼까?”


난 그녀가 지난번 어머님과 쇼핑을 갔다가 어머님이 산 머플러가 이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래서 어떤 건지 물어봤고 그녀는 별 다른 의심(?) 없이 쇼핑 간 날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었다. 난 그때 올해 그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정했다. 그녀의 어머님이 산 머플러와 같은 브랜드의 커플템처럼 보일 수 있는 다른 컬러의 머플러를 사기로. 극소수의 아들들과 대다수의 딸들은 어머님과 데이트를 한다.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녀는 꽤 자주 하는 편이라서 올 겨울에도 여러 번 어머님과 데이트를 할 것이고 그때 그녀가 어머님과 같이 했음 하는 마음으로 골랐다. 


“오 대박 미쳤어 진짜”

“응? 생각보다 더 격한 표현인데 ㅎㅎ 맘에 들어?”

“완전. 엄마 거랑 커플템이네 ㅎㅎ 엄마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줘야겠어  잠깐만”

택도 제거하지 않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셀피를 찍어서 어머님께 보내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내가 사진 찍어줘?” “응 하나 찍어주어봐”

연말 가족 모임 때 같이 하고 가자는 어머님의 답을 보여주면서 너무도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런 걸 사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야? 대단하면서도 너무 신기해”


때 마침 스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선물의 감흥을 뒤로 한 채 스시의 맛의 감동을 느껴야 할 시간이다. 

한점, 한점 먹다가 갑자기 그녀가 나를 보더니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오빠 아까 친구 만났을 때” “아~ 당황하진 않았어? 미처 못 물어봤네 미안”

“아니 전혀 당황하지 않았어. 근데 나 신기한 거 있어”

“뭔데?” “나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인 거 같은데. 남자들이 ‘와이프’라는 단어 대신에 ‘아내’라고 부르는 거 처음 들어서 너무 신기했어”

“그래? 왜 좀 나이 들어 보이고 이상해?”

“아니 너무 좋던데. 근데 오빠도 그렇고 오빠 친구도 그렇게 불러서 더 신기했어. 그래서 둘이 친구 하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던데”

“그놈한테도 말해 줘야겠네 ㅎㅎ 우리 칭찬 들었다고”


“그냥 대학생 때였나? 그냥 둘이 술을 먹는데 주변 직장인 무리들이 크게 떠드는데 ‘우리 와이프는’ ‘너네 와이프는’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이상하게 듣기 싫더라고”

“왜?” “모르겠어. 뭐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욕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날따라 이상하게 듣기 싫더라고”

“그래서 그때 둘이서 술 먹다가 우린 결혼하면 ‘와이프’라는 말 대신 ‘아내’ 혹은 이름을 부르자라고 둘이서 이야기를 했었지 ㅎㅎ”

“대박 그래서 진짜 그렇게 하는 거야? 이상한 남자들이네 ㅎㅎ 오빠 친구는 언제 결혼했는데?”

“3년 전에 했지. 내가 사회 봤어” “그럼 우리도 결혼할 때 사회 그 오빠가 보는 거야?”

그녀가 말한 ‘우리도 결혼할 때’라는 말에 장국을 마시다 사래가 걸려서 뿜을 뻔했다. 

“응 아마도 그놈이 보게 될 거야. 아니 자기가 본다고 생 난리를 피울 거야 ㅎㅎ” 

“그렇구나 그럼 내년에 우리 같이 밥 먹자. 오빠 친구랑 오빠 친구 아내랑~ 오빠가 예약한 곳에서”

“그래 연락해서 날짜 잡아 볼게”


그렇게 ‘우리도 결혼할 때’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깊이 남은 체 우리의 첫 크리스마스가 마무리되었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에 가는 길에 맑은 겨울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와서 스스로 너무 놀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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