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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Nov 01. 2024

#20210102

“그래? 그걸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 내 주변에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래도 좋게 보고 있어서 다행인 듯”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마주쳤던 친구와 커피 한잔을 하면서 우리가 ‘와이프’가 아닌 ‘아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슬이가 해준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무용을 했다고 했었나? 그래서 그런지 자세가 대단히 곧던데”

“지금은 안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니 계속 신경 쓰고 있는 거 같더라고”

“우리 같은 거북목 직장인들이 배워야 할 텐데 ㅎㅎ”

“우린 그냥 틀렸어ㅎㅎ 거북이로 살아야 해. 뱃살이나 관리해야지”

“그나저나 그 기이한 증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야? 이젠 사라진 건가? 한동안 그거 관련해서 말이 없길래”

“왜 말이 없으면 내가 잘하고 있어서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응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전혀”


그렇게 나는 얼마 전에 경험한 조금은 달랐던 ‘하루 다시 살기’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꺼냈다. 

“음 그간의 양상과는 조금 다르긴 하네” 

“그렇지? 그래서 조금 혼란스럽기는 하다. 크리스마스는 무사히 잘 넘겨서 다행이지만..”

“근데 생각해 보면 별로 다른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어떤 면에서? 직접 겪은 나는 대단히 혼란스러웠는데. 남 얘기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

“남 얘기라고 쉽게 말하는 것도 있긴 한데 잘 들어봐 멍청아”


그 녀석의 이야기는 이랬다. 처음 이 현상이 나타났을 때를 떠 올려 보면 내가 그녀에게 무슨 잘못 혹은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같은 날을 하루 더 살 수 있게 됐었다. 그래서 만회가 되었던 적도 있었고 아닌 적도 있었고. 즉, 결과가 바뀐 적도 있고 아닌 적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발생시킨 원인은 바뀐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즉, 결과를 바꾸기 위한 기회가 아닌 원인을 제공하지 말라는 기회라고. 


“그러니까 너는 원인을 제공했고 너의 여친의 반응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구조인데 그 결과는 너의 여친의 영역이니 화를 내던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든 크게 상관은 없다는 거지”

“그간 그 순서가 화를 내는 결과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아닌 결과였을 뿐. 이번에는 그 순서가 그냥 반대로 나온 거 아닐까? 어차피 넌 ‘원인’을 또 제공한 거니까”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결과가 아닌 원인을 위한 기회’라는 말에 가슴이 저린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 이 현상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 전날의 오늘을 최대한 잘 복기해서 그녀가 기분이 상한 포인트를 찾기 위해 노력했었다. 처음 이 현상이 나타났던 회사 앞에서 다른 팀 팀장의 질문에 대한 답에서 시작해서 후배 녀석이 아닌 여자 후배라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까지. 


근데 어느 순간부터 원인은 내버려 둔 체 결과만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정확해서 혼이 나간 거야? 표정이 왜 그래?”

“응 맞다. 너무 정확해서 엄청 커다란 몽둥이로 세게 머리를 맞은 기분이다”

“뭐야… 이상하게 순순히 인정하고. 근데, 너한테 들은 이야기만 종합해서 보면 내가 생각하긴 그래”

그 이후에 그 녀석이 한 말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멍해진 머릿속은 그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의미 없는 울림만 있을 뿐. 


그때 나의 나가 있는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내가 사준 머플러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와 어머님이 함께 찍은 셀피가 도착해 있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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