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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by 그런남자

“그래서 그렇게 여친 병간호하면서 여행 마무리 한 거야?”

“그냥 기다리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드시지 그랬어요 어차피 맛은 큰 차이 없을 텐데”

“에이 그래도 간 김에 유명한 곳에서 먹는 게 낫지”


새로운 회사에 출근 한 첫날 점심을 먹으면서 꺼낸 나의 여행 이야기에 각자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듣고 있자 하니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역시 회사에서 사생활 이야기는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제 여친은 괜찮은 거야?” “그럼요. 서울 다시 온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사실 서울에 와서도 며칠 동안 계속 몸이 안 좋았다. 아마 그냥 감기는 아닌 심한 독감에 걸린 듯했다.


“여행 가서 아프면 별론데 팀장님도 팀장님 여친분도 기분이 별로긴 하셨겠네요”

그렇게 시작된 나의 여행 품평회(?)는 끝이 나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면서 이번 달에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미팅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담당자를 지정했다. 그리고 데드라인까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덕트 및 비즈니스에 대한 것뿐 아니라 팀이 조금 커 지면서 팀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야만 했다.


“호칭은 현재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우리는 음… 나랑 CTO는 원래 알던 사이라서 따로 호칭은 없이 부르고 있었고 김팀장이야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었지. 우리도 다른 호칭이 필요하긴 해서 생각을 해 보고 있던 중이긴 했어”

“현재 우리 팀의 특성상 원래 알던 사이였던 경우가 많고 원래 알던 사이에 부르던 호칭이 있었으니 여타 스타트업처럼 ‘이름+님’은 조금 어색할 것 같긴 합니다”

“맞아요 저 역시 팀장님에게 이름+님으로 부르기가 조금 이상할 것 같긴 해요”

“김팀은 나한테 ‘이름+님’ 부를 수 있지 않아?”

“전 당연히 그렇죠. 뭐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성격인 거 아시잖아요. 지금 바로 불러 드려요?”

“아니야 그건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 같아. 참아주길 바라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최대한 빠르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아마 지금 생각으로는 영어이름으로 하는 게 가장 무난할 것 같긴 한데.”


나머지 팀 문화에 대해서는 박대표와 내가 따로 논의를 해 보는 것으로 커피타임을 마무리 지었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약간의 두통이 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근데 팀장님 혹시 같은 상황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던 중 이번에 같이 합류한 어떻게 보면 입사 동기가 되어 버린 팀원이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어떤 같은 상황?”

“여친분과의 여행에서의 점심 식사요”

“그야 당연히 다른 곳으로 가서 먹어야죠. 실제로 다른 곳에 가서 먹어 보니 맛도 큰 차이가 없긴 하더라고요. 근데 뭐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죠”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의 소리가 사라지기 무섭게 갑자기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난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 경험들을 자주 하면서 살고 있다. ‘하루 다시 살기’ 근데, 이상하리 만큼 최근에는 ‘하루 다시 살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분명, 나타나고도 남을 짓을 최근에 안 한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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