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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by 그런남자

“어우 벌써 사람이 저렇게 많은 거야? 서울이나 삿포로나 유명한 곳은 다 줄을 서네. 이렇게 추운데..”

“그러게 아직 오픈 까지는 30분이나 남았는데”

점심으로 삿포로에서 유명한 ‘수프카레’를 먹기 위해 검색해 둔 맛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서둘렀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해 보니 이미 줄을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이나 삿포로나 큰 차이는 없었다. 찾아본 바로는 11:30 오픈이고, 나의 스마트워치는 현재 시간이 11시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동시에 현재 기온이 -5도라는 사실과 함께.


“그래도 이왕 왔으니 기다려 보자”

“그래 알겠어. 근데 춥긴 하다”

그녀 보고 잠시 줄을 서 있으라고 한 뒤 난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뜨거운 캔음료를 샀다. 핫팩 비슷한 것이 있는지 둘러봤는데 찾지 못해 서툰 일본어로 문의해 봤더니 다 나갔다고 한다.

“여기 이걸로 좀 손을 녹이면서 마셔. 핫팩이 있나 봤더니 다 나가고 없다네”

“응 고마워. 나 핫팩 캐리어에 있는데 안 가지고 나왔네….”


기다리는 동안 확인해 보니 우리 앞에 6팀 정도 있었다. 식당 안의 사이즈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오픈하면 바로 들어가거나 그다음번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로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 식당은 그런 곳 없이 그냥 입구 옆 도로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낮은 기온에 눈 위로 부는 바람을 온몸을 받아 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더 최악인 것은 오전시간이라 그런지 햇빛 역시 건물에 가려져 우리가 기다리는 공간은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추위 때문에 말수가 부쩍 줄어든 우리는 그저 ‘춥다’라는 말 이외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식당이 오픈을 했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난 우리까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머릿속으로는 수백 번 돼 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 앞팀까지만 입장이 가능했다.

“음… 다음번에는 들어갈 수 있겠네”

“응 근데 나 너무 추운데 그냥 다른 곳에 가면 안 될까? 그냥 다른 거 먹어도 되고”

“그래도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깝잖아. 내가 서 있을 테니까 저 앞에 카페에 가서 따뜻한 거 마시고 있을래?”

“아니야 그래도 나 혼자서 어떻게 가 있어. 오빠는 여기 추운데 서 있는데”


가뜩이나 추위에 약한 그녀인지라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가능한 꽉 안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떨림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목을 길게 빼서 안을 보니 사람들은 한창 먹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빨리 먹고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차가운 음식도 아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은 걸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가 앉아서 주문을 하고 안을 둘러보는데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괜찮아?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

“밖이 추워서 그렇지 뭐. 안에 들어왔으니 나아질 거야”


주문을 한 음식을 먹어 보니 처음 먹어 보는 맛이라 낯설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맛이 있었다. 근데 그녀는 영 먹지를 못했다.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먹고 있는데 그녀는 더 이상 먹지 못하고 젓가락은 내려놓았다.

“왜? 맛이 별로야? 다른 거 시킬까?”

“아니야. 맛이 느껴지지가 않네. 그냥 오빠마저 먹어. 난 차 마시면서 기다릴게”

나 역시 대충 먹고 그만 먹으려 하니 자기 신경 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하면서

“추운데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다 먹어. 아깝잖아”

그녀의 말투와 표정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은 거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다 먹고 나와서 근처 카페를 가려고 하는데 그녀가 내 팔을 잡았다.


“오빠 미안한데 나 그냥 호텔로 가야 할 것 같아. 목욕 좀 하고 쉬어야 할거 같아. 몸 상태가 좀 안 좋아”

“아 그래? 너무 추운데 오래 있어서 그런 건가? 그래 어서 가자”

나는 방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를 타서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진 체 겨우 의자에 기대어 차를 조금씩 마셨다.

“나 이제 좀 잘게. 오빠는 나갔다 와 아직 오후 밖에 안 됐는데”

“혼자서 괜찮겠어? 내가 그냥 방에 같이 있을게”

“아니야 그래도 여행 왔는데 나 때문에 방에만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저녁 먹고 들어와”


그녀의 말에 나는 방을 나섰다. 내가 방에 있으면 이래저래 신경이 쓰일 것도 같아서. 그리고 그녀에게 줄 약도 좀 사고 자고 일어나면 먹을 것들을 좀 사기 위해서. 호텔을 나와서 유명한 라떼집에서 라떼 한 잔 마시고 쇼핑몰로 향했다.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고 그녀가 먹을 과일과 스시 도시락도 하나 샀다. 나 역시 하루 종일 추위에 떨고 그녀를 신경 쓰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저녁 먹을 때가 되니 귀신같이 출출해졌다.

쇼핑몰 푸드코트를 둘러보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중에 다른 여럿 메뉴를 제쳐두고 귀신에 홀린 듯 ‘수프카레’를 주문했다. 음식을 받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멍하니 ‘수프카레’를 쳐다보고 있었다.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숟가락으로 수프를 한 번 떠먹은 후 짧은 한 마디가 내 귀에만 들릴 정도 새어 나왔다.

“젠장, 맛이 별 차이가 없네….”

그녀의 감기와 어쩌면 앞으로 남은 여행 모두와 바꿀지도 모를 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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