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그리고 단풍
오늘은 10월 31일, 10월의 마지막의 밤이자, 할로윈 데이이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의 정중앙에서 단품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시즌이기도 하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제목과 달리 할로윈에 대한 이야기도, 단풍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주제를 글을 쓰기엔 오늘이 적합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면서 적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꽤 많은 이벤트들 속에서 살고 있다. 일단 현재까지는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서 나타나는 계절의 변화들이 있다. 봄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여름엔 무더위에 바다가 생각이 나며, 가을에는 단풍이 있고, 겨울엔 따뜻한 모든 것이 생각난다. 이처럼 '그때' 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주변엔 대단히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다양한 이유들-실은 바쁘거나 귀찮거나-로 미루고 있다. 그리곤 애꿎은 시간만 원망한다.
예전에 한 강연에서 연사로 나선 김창옥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심이 사라지면 계절의 구별을 느끼지 못한다고.' 거기에 나는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때마다 그때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고. 나는 과하게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벚꽃을 보러 어디든 가야 하며, 가을이면 항상 단풍을 보러 가고, 1월 1일이 되면 흐리다는 예보가 없는 한 동네 뒷산에라도 올라가 일출을 본다. 10월마다 하는 여의도 불꽃축제도 매번 보려고 한다. 하다못해 동지가 되면 팥죽도 먹는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당장 오늘, 아니 이번 시즌이 아니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냥 멍하게 있어도 시간은 간다. 어김없이, 그리고 대단히 빠르게. 일전에 허영만 화백은 '꼴'이라는 작품을 그리기 전에 관상을 배우기 위해 관상가를 찾아갔다고 한다. 허영만 화백은 관상에 대하 배우고 싶은데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관상가는 3년이 걸린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너무 오래 걸려서 안될 거 같다는 반응에 그 관상가가 한마디 답을 했고 그 답을 들은 허화백은 바로 배우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답은 '배우건 안 배우건 3년은 무조건 흘러갑니다.' 였다고 한다.
핼러윈은 외국 명절인데 왜 우리가 열광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차피 가을은 매년 오고 단풍도 매년 들 텐데 꼭 봐야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대단히 빡빡하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기회마저 날려버린다면.... 좀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