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억지
다시 한번 바이러스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2020년 상반기는 모든 이야기가 별수 없이 바이러스로 점철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산업군은 여행일 것이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수준의 2등을 꼽는다면 바로 극장 및 공연업계 일 것이다. 극장 가는 것과 공연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2020년 상반기는 거의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는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은 늘어나고 있지만 공연은 현재까지도 어떤 움직임조차 없긴 하다. 조속히 정상까진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수준으로 복귀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암튼, 난 대부분의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보는 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최애 영화들은 dvd로 소장하고 있어서 가끔 집에서 볼 때도 있지만 그 영화들을 처음 본 곳은 무조건 극장이다. 하지만 극장 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이야 워낙 ott 서비스와 집에서도 홈씨어터를 구축할 수 있어서 영화를 조금 더 실감 나게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과거에도 극장에 가는 것보다는 그냥 집에서 dvd를 보거나 pc에서 다운을 받아서 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에서 봐도 크게 상관없는 영화도 있지만-난 이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스케일이 크거나 사운드가 강조되는 음악영화 같은 경우는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것을 비할바가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안 가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 한번 생각해 보겠다. 참고로 영화 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영화를 싫어하는데 극장에 갈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극장에서 파는 팝콘 마니아가 아니라면.
#1. 편하다.
어찌 보면 가장 당연한 이유이다. 아무리 극장 바로 앞에 산다고 해도, 그리고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모자만 쓰고 나간다고 해도 집에서 보는 것보다 편할 수는 없다. 또한 집에서 본다면 내가 원하는 복장으로 내가 원하는 자세로 그리고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볼 수도 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그럼에도 라면이나 자장면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 시도해 본다고 하면 아마 가능할 수도. 하지만 과거에는 팝콘과 콜라가 거의 전부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애용하는 한 극장은 음식은커녕 음료도 물 이외에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난 어차피 영화를 볼 때 무언가를 먹으면서 보는 편이 아니라서 크게 상관없고 그 극장의 그런 식음료 반입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주 애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를 먹으면서 보는 것을 선호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겐 현재의 완화된 식음료 정책도 만족스럽진 못할 것이다. 그냥 혼자서 집에서 편하게 널브러져서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보는 편안함은 집 이외의 장소에선 누릴 수가 없다.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곳은 호텔 정도일 듯. 영화를 봄에 있어서 큰 화면과 훌륭한 사운드보다는 영화를 보는 편안함을 더 선호하는 것뿐이다.
#2. 편하다.
위에 편한 부분은 영화를 보는 주변 상황이 편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번 편한 부분은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의 편함이다. 집에서 영화를 본다면 내가 보고 싶은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 볼 수 있다. 또한 화장실을 가거나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멈춤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보기 싫은 혹은 지루한 부분을 빨리 돌려서 볼 수도 있다. 간혹 영어 공부를 위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자막을 삭제하고 보기도 하고 영어자막을 달아서 보기도 하면서 영화를 통해서 영어공부를 할 수도 있다. 이 처럼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의 편함은 집에서 영화를 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최근에 개봉하는 영화들은 러닝타임 자체가 대단히 길다. 기본적으로 2시간은 모두 넘는 것 같다. 중간에 화장실이라도 다녀 올라고 치면 적어도 2분에서 길게는 5분까지도 못 보는 장면들이 발생한다. 만약 그 장면이 중요한 장면이라도 되면- 예를 들어 누군가가 화장실을 가느라 식스센스의 마지막 장면을 못 봤다면 그 사람은 그 영화를 안 본 거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중요한 장면일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영화를 보는 행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들을 집에서 보면 모두 아니 거의 모두 제거할 수 있다.
#3. 그냥 습관이다.
왜 그런 습관이 들었는지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모솔이라서-아무래도 극장은 흔하디 흔한 데이트 코스이니-, 어두운 곳을 싫어해서, 답답해서 등등등. 극장 가는 습관이 들지 않은 것뿐이다. 나도 많게는 1년에 20번이 넘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지만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진 않는다. 누군가 이유를 물어볼 때마다 내가 항상 하는 대답은 '습관이 안되어서'이다. 지금은 당연히 아니지만 과거에 내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시기- 대략 20세기 후반-엔 한국영화를 극장에 가서 보기엔 조금 아까운 감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선 6000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해야만 했고 누군가와 함께 본다면 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굳이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 한국 영화를 봐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습관이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극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 역시 같은 이유라고 생각이 든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가장 먼저 '극장에서 봐야 하니 예매를 해야지'가 아닌 '집에 가서 다운로드하여 봐야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뿐이다. 예매도 비슷하다. 난 항상 영화를 예매해서 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현장에서 구매해서 보기도 한다. 어떤 행동을 하고 안 하고는 어찌 보면 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가 가장 보편타당한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바이러스 시국에도 난 종종 아니 꽤 자주 극장에 간다. 마스크를 항상 쓰고. 난 영화를 볼 때 무어가를 먹지도 않기 때문에 보는 동안에도 마스크를 벗진 않는다. 아무리 에어컨이 나와도 답답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벗지 않고 끝까지 본다. 영화에 최대한 집중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주말에도 보았고 다음 주에도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을 해서 보러 갈 예정이다. 확연히 한 달 전에 비해서 극장에 사람들이 늘기는 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 연기를 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의 아쉬움 따위가 이 시국에 중요한 건 아니다. 어서 빨리 내가 원하는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대작들이 개봉을 했으면 한다. 매일 같이 예매를 위해 멀티플렉스 극장 앱을 수십 번을 들락날락 거리는 수고로움이 생긴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