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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Oct 11. 2020

남자끼리 카페 가는

마흔 번째 억지

올해 추석 연휴에 친구와 점심을 먹고 헤어진 후 혼자서 신상 카페를 갔었다. 위치가 써억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은 언덕이 있어서 올라가는데 조금 힘든 정도. 하지만 요즘에 새로 생기는 카페들의 위치들은 정말이지 하드코어라서 그런 곳도 꽤나 많이 가본 나로선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도착해서 커피를 시키고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많이 놀랐었다. 나를 포함해서 한 10여 명의 손님이 있었는데 모두 남자였던 것이다. 그 카페는 직원들도 모두 남자여서 15여 평 되는 공간에 모두 남자들만 있었던 것이다. 난 남자만 있는 공간을 대단히 싫어하기 때문에 급하게 커피를 마시고 나왔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때 마침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기도 해서. 그렇게 나와서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나 역시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커피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새로 생긴 카페의 인테리어나 무드를 보는 것을 좀 더 좋아한다. 즉, 그 공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건, 혹은 아는 사람과 낮에 카페에 가긴 한다. 남자끼리. 그래서 어찌 보면 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우연에 일치로 손님 모두가 남자인 광경을 목격했을 수 있다. 그리고 남자끼리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게 뭐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거 같긴 하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벌써 20년 전-남자들끼리 카페를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상하리 만큼 어색하다고 생각했고 그 당시 남자애들은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남자끼리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럼 뭐가 어떻게 변화하였길래 그렇지 않아 졌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1.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와 남자들이 하는 일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눠져 있었다. 낮시간만 놓고 봐도 여자들은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카페에서 무언가를 먹고 마시면서 수다를 하는 반면, 남자들은 낮에는 주로 만나지 않던가 만나도 pc 방이나 당구장 같은 곳에서 서로의 승부욕을 불태웠다. 또한, 근육 운동은 남자들이 많이 하는 반면, 필라테스나 요가는 여자들이 많이 하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구시대적 유물론 같은 이야기이다.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근육 운동을 최근에는 여자들이 많이 하기 시작하고 있고 그와 관련한 산업도 덩달아 발전하였다. 또한 남자들도 본인들의 건강을 위해 무작정 근육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닌 기능성 운동들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더 이상 낮에 남자들끼리 모여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옛날 사람이라서 '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 역시 가끔 그러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런 내로남불이 있나.


#2.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저씨들은 믹스 커피만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이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전 같지만 불과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나도 종종 당 보충을 위해서 믹스커피를 마시긴 하지만 요즘엔 거의 안 마신다. 뱃살의 주범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최근 들어서는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커피'라는 음료뿐만 아니라 커피를 파는 공간, 커피를 내리는 사람, 그리고 카페 창업까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커피집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골목에만 커피집이 4개 정도 있다. 약 150m 정도 되는 주거지역의 골목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커피'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카페 창업에 대한 관심이 늘어 가면서 시장 조사 차원에서 많은 곳들을 가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근데 동업하고자 하는 사람이 남자라면 남자 둘 혹은 그 이상 이서 많은 커피집들을 돌아다녀 보고 커피와 방문한 커피집에서 파는 시그니처 혹은 밀고 있는 디저트 역시 먹어 볼 것이다. 그런 높아진 관심의 결과 남자들끼리 커피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남자끼리 커피를 마시는 광경을 더 자주 목격하는 것일 수도.


#3. 갈 곳이 마땅히 없다.

남자 둘이 혹은 셋이서 낮에 만났을 때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나 역시 지난 추석 연휴에 낮에 친구를 만나서 간 곳이 커피집이었다. 물론, 일반 커피집은 아니었지만 커피를 마시러 갔다. 게임이라도 하면 게임방을 갈 테고 쇼핑을 하러 갈 거면 백화점이라도 가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대낮에 갈 만한 곳은 대단히 한정적이긴 하다. 그럼 저녁을 먹을 때 혹은 저녁에 만나는 것이 베스트인데-난 사실 남자들은 주로 저녁 먹기 위해 만나긴 한다-휴일에는 점심을 먹기도 하니. 최근엔 게임을 안 하는 그리고 술을 안 마시는 남자들도 많이 늘어나서 그들이 낮에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은 커피집뿐이다. 그리고 둘러보면 엄청 많기에 그냥 들어간다. 이러다 보니 요즘 생기는 커피집들의 의자는 정말이지 도저히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운 형태로 변하고 있는 부작용도 있다. 그리고 나만 지키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걸 금기시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요즘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 졌으니 더더욱 그렇다.


지금은 남자들끼리 커피집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하는 것이 그렇게 어색한 시대는 아니다. 수다를 하지 않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면서 말을 한마디도 안하고 앉아 있더라도 전혀 이상한 풍경도 아니다. 추석 연휴에 낯선 경험 하나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될, 어쩌면 나 역시 그러고 있음에도 불구한 광경을 억지스럽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근데 아무리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고 해도, 아무리 특정 시간대였고 위치적인 핸디캡이 있다고 하더라도 10여명이나 되는 커피집 손님이 모두 남자인 경우는 대단히 낯선 경험이긴 하다. 그리고 주변에 그 날의 경험을 전해도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있는 척만 하는 실상은 그렇지 못한 그렇고 그런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나쁜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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