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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Oct 04. 2020

명절의 친척들

서른아홉 번째 억지

추석 연휴도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다. 슬픈 시점이다. 이번 추석은 다른 해 추석의 풍경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많이 달랐다고 한다. 나의 명절 풍경은 항상 같았기 때문에 잘 못 느꼈지만. 코로나로 인해 다들 고향집에 가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명절을 보내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몇 번 가지 않는 고향집을 찾은 사람들, 그리고 조금은 긴 연휴를 기회삼아 여행을 다니는 등. 고향 혹은 본가에 가는 사람들의 수만 줄었을 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시대가 점점 변하면서 명절의 풍경 역시 점점 변하고 있는 거 같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여전히 제사와 성묘를 하는 집들도 있지만, 그 수가 많이 줄었고, 지낸다 하더라도 간소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가족끼리 여행을 간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명절 연휴를 즐기거나 쉬는 것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왜 계속 추측성으로 글을 쓰냐면 나의 명절 풍경과는 모두 거리가 있는 모습들이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절의 풍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 중 하나가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가끔씩은 혈연인 친부모-이 하는 말들이다. 미혼인 사람에겐 결혼을, 기혼인 사람에겐 아이를, 백수인 사람에겐 취직을, 직장인들에겐 심지어 연봉을. 이런 어찌 보면 대단히 무례한 말들이 서슴없이 오고 가는 자리가 명절의 큰집 혹은 조부모의 집이다. 큰집 혹은 조부모집에서 저런 엄청난 멘트들을 쏟아내는 친척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친부모들이 크게 보호를 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들의 형, 누나 혹은 부모여서 일수도 있고, 본인들의 마음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이렇게 오랜만에-어쩔 때는 명절에만-만나는 친척들이 하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아 본 경험이 한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난 친척들은 아니고 부모에게 주로 이런 말들을 들어온지라 친척들에게서 직접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친척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은 이런 멘트들을 서슴없이 하는 친척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근데 오늘은 정말이지 경험이 1도 없어서 진정한 억지가 될 것 같다.


#1.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이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어떤 의도가 있는 질문도 아니다. 그냥 되게 오랜만에 봐서 딱히 할 말은 없고, 그러면 안 하면 되는데 안 하긴 또 좀 그런 거 같고 해서 애써 꺼낸 질문이 그런 류의 것들인 것뿐이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만나서 세계경제나 코로나 대응 상황 같은 류의 주제로 대화를 하기도 좀 뭐하긴 하다. 대충 대학은 졸업을 한 거 같은데 취직은 했는지, 회사는 다니고 있다고 들었으니 결혼은 언제쯤 할 건지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냥 지인들끼리도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특별히 물어볼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횡설수설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황 상 친척들이 많이 모이게 되면 하나의 질문이 꼬리를 물게 되고 계속된다는 다른 점이 있을 뿐, 그리고 그것이 듣는 자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혹은 걱정되어서 물어본 것이라면 그에 대한 해결책 혹은 대안이라도 같이 제시해 줄 것이다. 결혼을 못한 싱글이라면 소개를, 취직을 못한 백수라면 낙하산 줄이라도. 그런 능력도 딱히 없으면서 물어보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인 것이다.


#2. 그렇게 잘못 배워 왔다.

본인들도 그런 질문들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그래서 본인들도 그 나이 때가 되면 혹은 그런 나이 때의 조카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사람들은 본인이 배운 대로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은 잘 배워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글귀 중에 가장 와닫는 말 중에 하나가 있다. '잘 배운 다정함이 좋다.' 이런 것들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이고 나도 어릴 때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살았는데 점점 나이가 듦에 따라 가정교육의 중요선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본인이 어린 시절 친척들에게 그런 질문들을 들어왔고 또한 그런 질문들을 서슴없이 하는 친척들을 보면서 자랐다면 그런 질문들이 무례하다는 가치판단을 못하거나 혹은 민감도가 덜 할 것이다. 즉, 대단히 잘못 배운 것이다. 어디에서? 가정에서.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본인의 친척들이 그런 성향들이 있다면 안타깝게도 내년 연휴에도 같은 질문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런 질문을 듣는 것이 대단히 불쾌하다면 본인이 그런 나이에 되었을 때 안 하는 걸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못하게 하는 걸로 나름의 악습(?)을 끊어 내기를 권해 드린다.


#3. 남에 일에 관심이 많다.

즉, 오지랖이 넓은 것이다. 친척들의 상황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관심이 많고 좀 지나쳐 오지랖이 넓은 것이다. 평상시 다른 사람에게 대하듯이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 특히 손아래 조카들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다. 회사 혹은 조직에서는 자기 아랫사람들에게 하듯이. 그곳은 회사이고 상사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그냥 듣는 척하고 있을 뿐인데 그걸 착각하고 그 사람들이 본인의 말에 도움을 받고 심지어 고마워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다만 그들은 그저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뿐인데. 최근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한 주류회사 팀장이 나와서 회사 생활에 대한 나름의 시원한 이야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진행자들이 왜 그렇게 팀장과 혹은 회식이 싫은지에 대한 질문에 그 팀장은 이렇게 답을 했다.


‘재미없지, 도움되는 이야기 하지도 않지, 가고 싶을 때 갈 수도 없지, 자기가 먹고 싶은 거 먹지.’


손아래 친척들 역시 본인 회사의 부하직원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회사야 퇴사하면 그냥 동네 아저씨지만 친척은 퇴사도 안되니.


너무 안 좋은 이유들만 적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헛소문이길 바라지만 연봉이나 수능 점수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심으로 궁금하더라도 묻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일러 주고 싶다. 그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연휴가 마무리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아쉬운 마음에 잠들기 싫은, 하지만 내일을 생각해서 자야 한다는 두 개의 자아가 심하게 충돌하는 시점이다. 연휴가 끝난 김에 혹시라도 이번 연휴에 들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 역시 함께 보내버리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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