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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Jan 21. 2017

감정에의 침잠

도깨비

우리는 판타지를 통해 '말도 안 되는' 꿈을 꾼다.

도깨비와 사랑에 빠지고 저승사자와 친구가 되고 한겨울에 벚꽃이 흩날리는.

그 판타지와 로맨스는 오직 상상속에서만 가능하다. 

그에 대한 정확한 직시는 도리어 우리로 하여금 그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고맙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한국드라마의 오랜 공식인 신데렐라 이야기도,

잔인하리만큼 현실을 그려내어 드라마 같지 않게 된 드라마도,

아니면 이 둘 사이에 어설프게 자리해 어딘가 찜찜한 이야기도, 그 무엇도 아니다.

<도깨비>의 판타지다움은 너무나 확고해서 현실에 대입해 불편할 것도, 거슬릴 것도 없다.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의 삶은, 한 작가의 손 아래 자유롭게 창조된 어느 세계일 뿐이다.


현실의 그림자들을 거둬내고 허무맹랑함을 입은 서사 덕분에 오롯이, 그들의 사연과 감정들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에의 침잠.


나는 <도깨비>와 마주하는 시간마다 그렇게 된다.

일상의 사소한 고민들, 누구나의 인생이 그렇듯 안고 살아가는 걱정들,

시끌시끌한 바깥세상 이야기들도 머릿속에서 잠시 그 무게를 잃어버린다.

그 대신 내가 휩싸이는 것은 그들의 표정, 말투, 목소리의 떨림,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따라 그들의 감정에 순수하게 대면하는 경험이다.

현실의 잡생각들을 걷어낸 판타지적 상황은 참 '깨끗'해서, 네 명의 남녀들이 주고받는 감정들은 더욱 투명하고 또 진하게 다가온다.



오늘 <도깨비>를 보면서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떠나보냈을 때는 나도 은탁이처럼 울었겠지.

사랑하는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지금의 기억을 기록하려는 몸부림은 저렇게 처절하구나.

900년 간 죄값을 치루고도 끝없이 눈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운명이란 너무 잔인하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옛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저러할까.

 

그리움, 애절함, 애틋함이 넘실대는 감정들의 포화.

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에 깊이 침잠되었던 밤.
<도깨비>가 내게 허락하는 밤.


거기에 특유의 그림 같은 풍경들과 감성그득한 OST들이 덧대어지면 그 순간의 감정은 깊이를 한 겹 더 입는다.

섬세하고 정제되어 있고 감각적 자극 또한 풍부한 판타지적 세계에서 나의 감정들 역시 생생하게 반응한다.



이제 남은 건 단 2회. 생과 생을 넘나들며 엉켜있던 운명은 실타래를 모두 풀었다.

거칠고 먼 길을 지나 네 남녀는 다시 만났다.

작가는 더이상 물리칠 악인도, 치뤄야 할 죄값도 없는 상황에서 들려줄 이야기를 2회나 남겨둔 셈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마저 선사해줄 시간들에선,

그들의 감정 속에 더욱더 스며들어볼 일만 남았는지도.


그런 '순수한' 시간들은 현실에서 쉬이 허용되지 않는다.

슬플 땐 눈물 짓고, 설렘에 웃음 짓는 것이야말로 판타지가 선사하는 특권이다.

그러니 그것이 "슬픔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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