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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망태 Jun 26. 2024

술 없이 긴 인생을 산다는 것

어떻게 살지?

  삶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들을 사랑한다. 몸이 찌뿌둥할 때 나서는 공원 산책, 비 오는 날 드라이브 하기, 추운 날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커피 향기를 음미하면서 책 보기, 여행 가서 써먹을 외국어 공부! 여기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모두들 짐작 가능하겠지만 바로바로 맛있는 음식에 어울릴 향긋한 술 한 잔이다. 물론 한 잔으로 끝나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은 주객전도가 되어 술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되겠지만, 술은 그러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기에 왕좌에 앉혀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슨 얘기든 시작만 하면 술 예찬으로 귀결되는 뼛 속부터 애주가인 나의 인생에 많은 재미를 더해주었던 술과 이별했다. 


  "술 없이 이 긴 인생을 어떻게 살려고?"

  최근에 내 금주 소식을 전해 들은 술친구가 웃으면서 물었다. 다양한 분야의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 친구는 함께 술을 마실 때마다 생각지 못했던 주제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술자리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곤 한다. 친구가 끓인 꼬들한 라면에 소주를 함께 마시면서 나누었던 유쾌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그가 던진 질문이 더욱 이해가 가고, 술 없이 이 긴 인생을 어떻게 살지 덜컥 걱정이 되기도 한다.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 인생 앞으로 어떡하지?


  술에 취하면 가끔씩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축복이 찾아오곤 한다.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없는 정신 상태가 된 데다가 몸도 적당히 흐느적 말랑해지고 가만히 있어도 온 세상이 흔들리곤 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도 하다. 몽롱한 기분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은, 그 느낌만으로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느낌과 순간들이 싫어서 술 마시는 걸 싫어하기도 한다. 몸에 흐르는 알코올의 기운이 무섭고, 무력하게 흘러만 가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는 얘기다. 듣고 보면 양 쪽 모두 맞는 말이라는 것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다른 생각과 취향이다. 



  그럼 술을 마시지 않고 보내는 시간들은 얼마나 꽉꽉 차 있다는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막상 방법이 다를 뿐 누구에게나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각각의 방법이 있는 듯하다.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을 바라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숏폼 콘텐츠를 보는 시간-이 때의 뇌는 쉬기보다 더욱 바쁘게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잠도 자지 않으면서 그저 누워있는 때에도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그러니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 긴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재미를 더하려고 노력한다. 바로 지금의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잠시 시간이 날 때면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내 몸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머릿속에 생각을 없애고 미간에 힘을 풀고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본다. 어깨를 펼치고 숨을 깊게 쉬면서 허리도 곧게 편다. 다리를 꼬고 있다면 풀고 발끝을 멀리 보냈다가 정강이 방향으로 당겨본다. 술을 마시면 두세 시간도 거뜬하게 보낼 수 있는데, 심호흡을 하면서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은 1분만 지나도 좀이 쑤신다. 그거야 아무래도 내가 명상을 한 시간보다 술을 마셔온 시간이 많으니까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긴 시간 나를 돌아볼 수 있으려면 내가 술을 마셔온 시간만큼의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명상시간이 술 마셔온 시간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한참이 더 걸리겠지만.


  하지만 술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술자리에 함께 앉아 그 분위기를 공유하여 여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마시든 친구들이 마시든, 술 없이 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가끔은 명상을 하고 가끔은 멍 때리고 그리고 종종 친구들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이 채워질 것이다. 부디 따뜻한 시간들이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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