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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망태 Jun 19. 2024

드렁큰 라이브 드라이브

만취 생방송의 묘미와 명암


  만약 인생을 사는 내내 두고두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날들에 어떤 공통적인 법칙이 있다면, 애주가들의 제1 법칙은 분명 '술'일 것이다. 술을 마시면, 술을 '많이' 마시면 그만큼 재미있고 때로는 황당하고, 그런 일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치욕스럽거나 때때로 후회할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 날도 그렇지만 그 뒤에도 종종 떠오를 때마다 너무 웃겨서 혼자 이마를 치거나 짜증으로 이불킥을 하는 사건들과,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해 주었을 때 모두 배꼽을 잡으며 웃을 수 있는 희대의 명장면이 탄생하기도 한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애주가였던 나도 물론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특히 나와 함께 책 읽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도 '여러붕~'이라는 유행어로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 그중 가장 유쾌하다. 우리는 한 달에 두 번 온라인으로 만나 함께 책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데, 평소에도 채팅방에서 책 얘기는 물론 여러 가지 교양과 상식, 일상과 함께 주옥같은 아무 말을 공유하고 있다. 내가 모임에 합류한 것이 2021년쯤이어서 벌써 3넘게 함께하고 있다. 


  때는 바로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던 여름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이었다. 마침 여행 도시로 이사 간 친구가 있어서 친구 가족과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친구가 소개해준 지역 유명 맛집에 가서 추천 메뉴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종은 소주였다. 애주가는 모든 종류의 술을 환영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 있는 술은 역시 소주니까. 소주에 맛있는 음식들을 곁들이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가족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행복이 성큼 다가와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마시고 제법 많이 마시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마실 때도 그렇지만 친구 가족과 마시면서는 특히 만취할 일이 별로 없는데 그날따라 제법 많은 술을 마셨다. 취기가 꼭대기에 달할 즈음 친구 가족과 헤어져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그때 마침 띵! 하고 알림음이 울렸다. 책모임 친구들의 음성채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얼른 음성채팅에 접속했고 그때부터 드렁큰 라이브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여러붕~ 저 술 마셨어요. 헤헤."

    책모임 친구들은 여행에 대해 물었고 나는 친구 가족과의 즐거운 저녁 식사에 대해서 얘기했다. 만취한 기분에 음성채팅 대화까지 더해져 기분이 더더욱 좋았고 목소리 크기는 점점 커져서 자동차 지붕을 뚫을 기세였다. 조수석에 앉은 가족이 기사님 운전에 방해된다며 조용히 해주기를 요구했지만 나는 오히려 "야, 조용히 해!"라며 목소리를 더욱 높였고, 그 상황을 듣고 있던 라이브 청취자들은 웃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 책모임의 최연장자인 동시에 나름대로는 책에 대한 열정으로 일종의 독서인적 권위를 갖고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만취한 상태에서 가족들과 아웅다웅하는 모든 과정을 생방송하고 있는 상황이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었을 것이다.


  물론 애주가들은 술이 취한 상태에서 문자 채팅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므로, 그들은 나의 음주 편력이나 음주 채팅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다. 그럼에도 가족 여행, 즐거웠던 식사 자리,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여름밤의 고조된 분위기, 만취한 고주망태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 등 많은 요소들이 음성 매체를 타고 전해져 나의 사랑하는 많은 '여러붕~'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던 것이다. 그들은 많이 웃었다. 그리고 '여러붕~'을 찾는 나의 원맨쇼는 숙소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발단은 내 가족의 노래 실력을 자랑한 것이었다. 그는 그날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평소 나의 책모임 친구들과 내적인 친근감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던 모양인지 내가 노래 실력을 자랑하며 부추기자 냅다 노래를 시작했다. 책모임 친구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고조된 분위기에 나도 노래를 불러 젖혔다. 노래를 잘하지도, 즐겨하지도 않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나 조차도 모를 일이지만, 그것이 만취 라이브니까. 그렇게 그날의 생방송은 청취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서 대화와 노래로 가득 채워졌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여러붕~'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고 있다.


  내가 금주 소식을 전하자 책모임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의 '여러붕~'을 볼 수 없다며 상당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거리를 두고 보면 만취 상태에서 택시 기사님을 괴롭히고 가족들에게 막말을 하면서 한밤 중에 호텔에서 노래도 부른 술주정 종합세트를 실시간으로 라이브까지 한 날이지만, 그런 망가진 모습마저도 웃으며 들어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오늘 웃으며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책모임 친구들이 아쉬워할 때마다 나는 말하곤 한다.

  "저의 여러붕은 끝나지 않습니다. 제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저의 여러붕은 영원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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