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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Sep 27. 2018

아침 6시 반에 하는 퇴근

나의 퇴근길은 다른 이들의 출근길이 된다

#새벽 #퇴근 #사람들



1.

이번 학기에 학교를 가는 날은 딱 4일, 학교를 가지 않는 날 중 이틀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공부도 공부지만, 철학은 원래 따습고 배부른 상태에서 해야 잘되고 경영학은 원래 돈 많은 척 스스로를 속여가며 해야 잘된다. 둘 다 전공하는 나로서는 푼돈이라도 벌어야지 별도리가 없다.


2.

밤 11시에 시작되는 아르바이트는 아침 6시 반이 되어서야 마친다. 밤낮이 바뀐 일이라, 나의 퇴근길은 다른 이들의 출근길이 된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지나면 눈에 익은 사람들이 생긴다. 첫 번째 신호등을 지날 때 즈음에는 항상 그곳을 지나는 키 큰 외국인을 마주친다. 그렇게 오래 매일 출근하는 것을 보면 이제 외국인은 아니실지도 모르니, 어쩌면 이 문장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그다음 신호등에서는 전동카트에 올라탄 야쿠르트 아주머니와 서로를 가로지르고 그다음에는 항상 늦은 것 같은 조급한 발걸음으로 걷는 여성분을 마주친다. 그네들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지각이신가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이들에게 정이 든 것이 아닌가 싶다.


3.

상가 사이를 걷다 보면, 욕심을 내 구르마 위에 이것저것을 올린 고깃집 사장님이 오르막인 현관 앞에서 애를 쓰시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비가 내리던 지난 금요일에는 비를 맞으며 힘을 주는데도 턱을 넘지 못하는 아저씨에게 손을 빌려드렸다. 단골은커녕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가게 사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비 맞아가며 고되게 사시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이가 몇이나 될까 싶다. 고깃집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분주히 매대를 채우는 빵집 아저씨도 만나볼 수 있다. 7시 오픈이라고 버젓이 적어두셨으면서 이 가게는 6시 40분 즈음에 들어선 염치없는 손님에게도 샌드위치를 팔아주신다. 이번에는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세상에는 참 바삐 사시는 용감한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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