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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Oct 01. 2018

영어 강의는 분명 세 개였을 텐데

이 알파벳 덩어리들은 어디서 왔는가

#대학 #영강 #글로벌



1.

이번 학기에 듣는 6개의 수업 중 3개는 영어 강의다. 경영대 수업은 어차피 국강(한국어 강의)보다 영강(영어 강의)이 많아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다. 한두 해 듣는 것도 아니라 익숙하게 3개 정도를 영강으로 신청해두었다. 수업은 나쁘지 않았다. 교수님들의 영어 실력도 나쁘지 않았고, 좋은 강의는 영어로만 열릴 때도 있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들으러 자리를 옮겼다. 철학 강의는 모두 국강으로 신청해두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제대로 된 철학 텍스트 번역본이 거의 없습니다 ... 그래서 일단 우리 교재는 Clive Cazeaux 의 The continental aesthetics reader, 그리고 도서관에 칸트의 논문을 비치해놓았으니 다음 수업까지 챙겨 오시길 바랍니다.

하루가 끝나고 도서관에 들러 교수님이 비치해두신 논문을 받았다. 70 page 짜리 알파벳 덩어리를 손에 들었다. 아무래도 이 수업에서도 한국말 듣기는 어렵겠구나 싶었다. 다음 날에는 아침부터 영어 수업을 듣고 오후가 되어서야 철학 강의 교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국강이겠지 싶어 설레는 찰나.

텍스트는 강의계획서에 있는 것처럼 Alexander Miller 의 Philosophy of Language 입니다. 쉽게 읽을 만한 영어로 적혀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책에 오류가 몇 가지 있어 만약 혼자 독파해 나아가다 오류를 발견한다면 제게 알려 학우들과 공유해주길 바랍니다.

철학 텍스트가 쉬워봐야 얼마나 쉬울까. 오류까지 있다니, 이번 학기는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망했다.


2.

생긴 것도 그렇게 한국스럽지 않은 캠퍼스이긴 하지만, 원래 학교에는 외국인 학생이 많은 편이었다. 교환 학생으로 온 친구들도 많고, 우리처럼 똑같이 입학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종종 있다. 같이 학교를 입학한 같은 반 형은 태양의 후예에 단역으로 나오더니 비정상회담에도 얼굴을 비추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뭐 하고 있으려나 싶다. 잘 살고 있겠지.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에는 여전히 외국인 분들이 많다. 달라진 점이라면 조금 더 국적이 다양해졌다는 점일까, 2년 전 즈음에는 대부분 미국이나 중국 출신의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이탈리아나 콜롬비아, 러시아, 스웨덴 등에서 온 친구들이 눈에 띈다.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배우는 한 수업에서는 교수님이 이 교실 안에서 네트워크를 만드는 실험을 해보자고 30분 동안 옆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을 주셨다. 스페인에서 대학을 다니는 미국인 친구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페인에서 순례를 했던 이야기를 꺼냈더니 자기도 30km 정도지만 순례길을 걸었단다. 세상 참 좁구나 싶었다.


3.

경영대에는 팀플이 많다. 기말 프레젠테이션 주제가 웬일로 빨리 정해져서 시간이 있을 때 자료조사를 조금 해두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한국 기업이긴 하지만 일본을 주 무대로 하고 있는 기업이라 한글로 된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행히 도쿄와 뉴욕에 동시 상장되어 있어 IR 자료는 영어로 구해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주 서비스 지역은 일본인지라 영어로도 기사나 보도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워 결국 일본어로 기사를 읽는다. 대학에 와서 일본어 공부를 조금 쉬었던 터라 사전을 종종 찾아본다. 이 무슨 글로벌함인지. 학교를 다니는 데 쉬운 것이 하나 없다. 공부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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