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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Oct 04. 2018

휴일의 감상

휴일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비둘기 #커피 #친구



1.

휴일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어제는 쉬는 날이라서, 학교에 갈 시간 즈음에 떠진 눈을 다시 감고 늦잠을 잤다. 일어나서 다시 자고 일어나는 사치를 세 번씩이나 부린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서 처음 한 일은 점심을 먹는 일.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두 시간 정도 보고 나서야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게을리 나선 거리에서는 분주히 부리를 놀리는 비둘기를 만났다. 점심 내내 먹이를 찾아 보도블록 사이를 쪼았을 것 같은 성실함에 문득 적어도 비둘기보다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심지어 놈은 걷는 속도도 나보다 빨랐다.


2.

점심을 먹고 나서는 커피콩을 갈았다. 핸드밀을 열심히 돌려 원두를 적당히 곱게 그라인딩한 후에 여과지를 올려둔 드리퍼에 담았다. 셰프님의 말씀을 따라 뜨거운 물을 따라둔 드립 포트를 섬세하게 기울여 커피를 내렸다. 커피가 숨 쉬는 것을 보라는 말 조각들 사이로 고소하게 점잖은 커피 향이 자리 잡았다. 마무리에는 엄마가 주전자를 들었다. 고르고 예쁘게 부푼 커피를 보고 감탄을 하니 웃으며 아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

왜 그래, 이래 봬도 자격증 있는 여자야

이제 자격증을 딴 지도 수 해가 지난 아리따운 홈 바리스타를 모시는 집안 막내는 얌전히 즐겁게 커피를 마셨다. 오늘 커피는 참 맛있다.


3.

약속 시간은 4시. 지난 일주일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휴일을 맞은 친구와 함께 나머지 친구의 아르바이트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멕시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그녀, 생각해보면 휴일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 모이고 나니 미소로도 채 다 가려지지 않은 아이들의 피로가 눈에 띈다. 서글픈 마음으로 오늘도 그네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역할을 맡는다. 그렇게 잘할 필요 없다. 어차피 곁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인연인 것을 서로 잘 안다.


모이고 헤어지는 데는 딱 3시간이 걸렸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지 3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가야만 한다. 공부를 하는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독서실 아르바이트지만 힘들지 않을 리가 없어 함께 마음으로만 농땡이를 피워준다. 아르바이트 장소에 데려다주고 나서야 나머지 한 친구도 오늘 사실 집에 가서 마저 해야 할 업무가 있음을 태연스레 밝힌다. 사실 나도 해야 할 과제와 쉼 없이 다가오는 시험들에 밤을 좀 써볼 요량이었기에 웃는다. 서로를 위해 조금씩 부담스러운 삶의 일부를 숨겨둔 이 상황이 고맙고 슬퍼 버스를 태워 보낸다. 휴일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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