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스물두 번째 편지, 공군 군수 2 학교, 2016.07.10-12
To. 모두에게
행복했어요. 아직 결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그려진 나의 가족이 함께 나를 찾아주었으니까요. 한 손에는 누나 손을 잡고, 아빠와 엄마와 함께 길을 걷는 날이 다른 것도 아니고 내가 군대에 온 덕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말 묘하고 신기하네요. 재밌는 하루였던 거 같아요. 빕스에 가서 서로가 먹을 음식들을 함께 고르는 시간도, 진주성을 들려 여유롭게 산책도 즐기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다들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정말 행복했어요. 엄마와 콩씨가 같이 한복을 보며 웃고 같이 투덜거리고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아빠의 썰렁한 농담에 나와 누나가 함께 골똘히 답을 생각하고, 엄마가 아빠한테 음식을 건넬 때 내가 누나한테 음식을 먹여주는 그런 장면들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기쁜 기억이었어요.
내가 이런 편지를 쓰고 있던 것을 알았을까 방금 두 장의 편지가 함께 도착했어요.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 모두 서로가 참 마음에 들었던 것 같네요. 면회 오기 전에 한동안 걱정하던 일들이 모두 괜한 걱정이었나 봐요. 두 편지 모두 참 맑아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신난 느낌과 즐거움이 가득 담긴 글들. 사실 모든 일은 뒷맛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뒷맛이 쓰면 뱉고 싶어 지기 마련이고 아무리 행복한 하루도 끝이 뒤숭숭하면 즐거움보다는 아쉬움이 커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하루는 최고의 하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면회를 끝내고 들어가는 내 발걸음도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어요. 모두를 뒤로하고 가야 한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생활관으로 걸어가는 15분 남짓되는 시간 정도만 아쉬웠을 뿐 어느새 내 자리를 찾아갈 수 있더라고요. 개운한 복귀. 정말 만족스러운 면회였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이렇게 행복했던 면회도 슬픈 소식을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나 봅니다. 사실 트라야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직은 너무 어색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면회하고 돌아온 날 불침번을 서게 되어 1시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었는데, 트라야가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안 그래도 외박 때 너무 신경을 못 써준 것 같아 미안했는데 이제는 예뻐해 줄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에 트라야에게 최선을 다해주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남아요. 중학교 때 처음 만나 날지 못하도록 잘려있는 날개를 보고 마음 아파하던 날들도, 볼을 만져주면 어느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던 날들도 기억이 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이리저리 공부하랴 일하랴 집에 있을 시간이 없어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날들도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책을 읽을 때 어깨나 등에 올려두고 누워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 함께 행복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지만, 이 아이가 나와 함께한 시간들이 행복한 일생이었을까 의문이 남아 정말 아쉽고 미안해요. 이제는 내 옷 위에 똥을 싸고 모른 척해서 똥새라고 놀릴 수도 없고, 형이 'KFC에 가서 이거로 해주세요라고 하자'는 농담을 했던 것도 기억 속에서만 되뇔 수밖에 없네요. 반짝인다고 안경을 물어뜯으러 다가오거나, 책만 보면 부리로 한 장씩 구멍을 내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 깃털이 노랗고 예쁘던 왕관 앵무. 가만히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천천히 걸어서 다가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공룡의 후예구나 싶던 이 아이가 우리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부디 행복했기를 빌어요.
나는 아마도 트라야를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헤어져 왔던 많은 인연들 중에 가장 시간을 쏟지 못해주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것만 같거든요. 아직 입대한 지 8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말 처음으로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이 아쉽고 원망스러웠어요.
좋은 이별은 눈물로 웃음을 그려서, 눈물이 마를 때 즈음 그 웃음 모양대로 꽃을 피워 행복하게 그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이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아버지를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것처럼 언젠가 저도 트라야를 웃음으로만 기억할 수 있겠죠. 하지만 미안함으로 끝맺은 관계가 아직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면회 중에 엄마랑 누나가 나는 투덜거리거나 힘들다고 말하지를 않아서 조금은 걱정이 된다고 한 적이 있던 것 같아요. 사실 가끔씩 힘이 부칠 때도 있고 마음이 불편하고 아플 때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아요. 들어주는 것은 잘하지만 그러다 보니 말하는 법을 조금씩 잊어버린 것 같달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어떻게 표현될지, 너무 가볍게 들리지는 낳을지, 내 감정이 잘 전달될지. 그래서 트라야에 관련된 이야기도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어요. 그 감정들이 아픈 감정이긴 하지만 정말 소중한 감정들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커가면 커갈수록 말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면회 때는 누나도 잘 말을 안 한다 그랬지만 나는 힘들 때마다 얘기하려고 노력했었어요. 말하는 게 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내 동반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리고 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나, 엄마, 아빠, 형에게서 언제나 위로를 받고 있었어요. 어리광 부리고, 안기고 하는 모든 시간들은 내게 행복이고 위로였죠.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슴속에 품어도 세상은 따뜻하고 평화롭게 보이거든요. 생각해보니 이게 '사랑'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어요. 쓰기 쉬운 편지는 아니었지만 벌써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되는 것도 이 편지를 엄마와 아빠, 누나가 봐줄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가끔씩 트라야가 보고 싶고 생각나겠지만, 저는 앞으로 그냥 슬프면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우면 마음껏 그리워하며 천천히 마음속에 트라야를 묻고 추억하려고 해요. 그래도 소식을 전화로 들은 게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들어서 한결 기분이 나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글을 맺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지금 이대로 편안한 마음을 품고 글을 마칠게요. 고맙고, 사랑합니다.
2016.07.10~07.12 -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뒤늦게 이 편지를 발견해 스물세 번째 편지가 먼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