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마흔여섯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1.08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어젯밤에는 비가 내렸어요. 세상은 조금 더 추워졌고, 낙엽은 비에 젖어 한 단계 더 무시무시한 쓰레기인 젖은 쓰레기가 되었죠. 오늘 하루는 뭔가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근무를 평소보다 조금 더 나가서 그런지, 중간에 강연을 들으러 다녀와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하늘이 내려준 젖은 쓰레기가 유난히 빗자루를 거부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는 정말 빨랐어요.


요즘에는 '위대한 패배자'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결국은 패배했지만 나름 위대했던, 나름의 멋스러운 삶을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인데 '역전의 신' 생각이 나 조금의 망설임 끝에 대출을 해왔네요. 지금은 '요한 슈트라우스' 부분을 읽고 있는데 체 게바라나 루이 16세 같이 잘 알고 있던 인물들 외에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아 즐겁게 읽고 있어요.


일단 지금까지의 소감은 생각보다 새드 엔딩도 그렇게 나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 같아요.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역전을 하기보다는 당하는 쪽인 데다가 패배로 삶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중에는 정말로 매력적인 패배자들이 많더라고요. 이 책의 서문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다'라는 제목을 들고 있어요. 그리고 그 서문 안에는 '좋은 패배자란 느긋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라는 문장이 있었어요. 참 맛 좋은 문장이죠? 물론 내 이야기는 좀 더 따뜻한 빛깔로 막을 내렸으면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도 그런 느긋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으며 질 수 있는 매력적인 패자 말이에요.


4개월 동안 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조금은 노련한 일병이 되어 중대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차량 정비나 점검 같은 것도 대부분 마스터해서 후임들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행정이나 근무 지원을 위한 일들도 확실히 하고 있어 꾸준히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선임들도 내가 라인반에 남아서 정말 다행이라고들 하시는 것을 보면 그동안 꽤 잘 해온 것 같죠?


남자친구는 이렇게 하나씩 잘 해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 콩 아가씨는 어떤지 잘 모르겠네. 요즘은 공부 스트레스가 좀 심해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조금 추워지는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내일은 아침부터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진다고 해요.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주길 바라요. 사랑해요.


2016.11.08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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