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로 새어드는 노랫말

쉰일곱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2.24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마치 짧은 휴가와도 같은 주말. TV가 없는 관계로 오늘은 아침부터 이어폰을 꽂고 책을 읽었어요. 어제 빌려온 소설책을 펴고 CD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해가 뜨면 조명을 끄고 답답하면 창문을 열고, 그러다 추워지면 이불을 덮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 묘해요. 읽고 있던 글귀들 사이로 가사가 스며들고, 하지만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가사를 계속 놓치며 흘려보낼 수밖에 없고. 때로는 잠시 책을 읽는 것을 멈추고 가사를 들어보아도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를 때도 있고, 단지 몇 마디만 들었는데 마음을 빼앗길 때도 있고. 그렇게 몇 시간 차분히 노래를 들으며 문장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게 인생 아니겠어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책. 내가 계속 읽고 있던 이 책이 나의 인생이라면, 그 사이로 들려오는 그 노랫말들은 아마도 내 주변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당신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그런 내 주변의 목소리. 그래서 문득 옛날에 했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고요.


물론 이 곳에 오기 전까지 우리는 매일 같이 만나기도 했었고, 하루 종일 함께 한 날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언제나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 거예요. 매 순간 달라지는 생각과 감상들을 모두 서로에게 알려줄 수는 없고, 하물며 어떤 생각을 했었고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평생 해도 부족한 일이겠죠.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당신과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더 어려울 거예요. 내가 알고 있던 그때의 누군가. 그때의 말과 생각이 지금의 누군가를 모두 보여주지는 못하니까요. 내가 놓친 그 사이의 가사와 목소리들에 담겨 있는 당신. 그래서 나는 언제나 새롭게 보려고 해요. 매번 새롭게 봐주기,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봐주기. 그것도 참 나쁘지 않은 생각 아닌가요. 언제나 소홀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 내일은 누나가 면회를 와요. 나는 내일 또 새로운 누나를 사랑하게 되겠죠. 얼른 와요, 아가씨. 사랑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2016.12.24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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