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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다원 Feb 29. 2024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참 곤혹스러운 말이다. 이토록 짧은 한마디에 누군가는 인생을 담는다. 나의 할머니, 차애순 씨는 '너 때문이야'라는 다섯 글자에 가족의 불행을 담았다. 아빠의 이혼과 사업 실패의 원인이 다섯 글자 한마디로 설명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가족의 불행으로 태어났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할머니는 점을 봤다고 한다. 그 점쟁이는 나는 우리 가족에게는 태어나면 안 될 존재라고 점쳤다. 그는 내가 태어나면 나의 아빠가 이혼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할머니에게 미움을 받아야 했다.


 91년 8월 19일. 나는 결국 태어났다.


 정말 용한 점쟁이다. 내가 태어난 지 1년이 막 지났을 무렵, 부모님은 끝내 남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아빠, 두 살 위 터울의 오빠와 나까지 네 식구가 되었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먼 기억은 '나의 역할'을 인지한 때부터 시작된다. "우리 집의 재수 없는 아이."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는 물어본 적도 없는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주인공은 할머니의 아들이자 나의 아빠다. 그녀는 손녀딸을 고아원으로 보내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때 아빠의 마음이 짐작되지 않는다. 책임감과 자식에 대한 부성애이었을까? 어쨌든 그녀의 말에 아빠는 길길이 날뛰며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나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할머니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며, '고아원에서 자랄 뻔한 네가 아버지 덕분에 함께 살고 있으니 말 잘 듣는 딸이 되길' 바랐다. 그녀의 생각에 말을 잘 듣는 딸이란 두 살 위의 오빠의 밥을 차려주거나, 설거지, 빨래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바람처럼 되지 못했다. 그뿐이랴, 오빠한테 시키지 않는 것을 내게만 시킨 다는 이유로, 할머니가 시키는 심부름을 대부분 모르쇠 했다. 덕분에 나는 늘 혼 났고 그때마다 서럽게 울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네가 너무 울어서 우리 집안이 재수가 없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 후 아빠의 사업이 망한 것도 그래서 우리가 월세 30만 원 짜리 반지하에 이사를 가게 된 것도 모두 내 탓이었다. 좀 더 커서 중학생인 오빠가 담배를 피우는 것도 모두 내 탓이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의 강한 믿음만큼 내게도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나의 탓이 아니라는 믿음이었다. 나를 낳기로 한 것도, 이혼을 결심한 것도 부모님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아빠였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으로 가져간 손은 나의 손이 아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개입되었던 적이 없다.


 살면서 할머니를 사랑했던 기억이 없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를 닮아가고 있었다. 가족의 불행은 나의 탓은 아니지만 나의 어린 시절 불행은 '할머니의 탓'이라고, 나의 어린 시절의 불행을 담았다. 물론 이미 죽고 없는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겠지만. 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무척 묘한 변화를 가져다 줬다. 더 이상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재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누군가가 살아진 것이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 앞으로의 나의 불행은 나로 인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조금 기뻤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나는 평생 할머니의 믿음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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