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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신네모 Feb 09. 2023

1. 프롤로그

나의 업사이클링 레시피를 시작하며

 업사이클링과의 첫 만남

업사이클링(새활용, up-cycling) :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재활용, recycling)' 차원을 넘어서 디자인을 가미하는 등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업사이클링이라고 하면 자연보호, 환경보호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솔루션 중 하나라는 거창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나도 이 같은 생각에 동감한다. 실제 내가 업사이클링 한 작품들도 최소한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또는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일부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업사이클링 작품의 시작 동기는 그렇게 순고하지 않으며 거창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사회적 문제 해결이란 목적 또는 취지를 생각했다기보다는 주변에 버려지는 것들을 보다 머릿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들어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에 재미와 뿌듯함을 느낀 것이 시작이었다면 맞을 것이다.

 처음으로 업사이클링 작품을 언제 시작했는지 또 어떤 것이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남아 있는 사진으로 유추해 볼 때, 유학시절에 처음 자취방을 얻고 필요한 생활용품을 하나씩 구비하기 시작할 무렵 만들었던 것들이 시초였다고 생각된다.

작품명: 종이컵 크리스마스트리, 2010

 당시 제법 많은 것들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종이컵으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타지에서 홀로 맞이한 첫 연말, 스타벅스에서 초록색 로고가 새겨진 일회용 스벅 종이컵을 보는 순간, 한국에 있을 때 매년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한 달 전에 꺼내 주시던 크리스마스트리가 떠올랐다.

 스벅 종이컵으로 다 만들고 싶었지만 가장 싼 오늘의 커피로도 트리를 만들 만큼 당시 내겐 금전 적 여유가 없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역 앞에 있는 백 엔 샵에 가서 알록달록 색상이 있는 일회용 종이컵을 사서 원뿔 형태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후 맨 위에 스벅 종이컵을 올려 트리를 완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하얀색 종이컵으로 다 만들 수 있었지만  그나마 좀 더 비싼 칼라 종이컵을 섞어서 만든 건 당시 작업에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멋지고 이쁘게 코디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랄까... 촬영해 두었던 영상을 보면 조금은 허접하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지만, 처음 조명을 켰을 때 방 안을 맴도는 따뜻함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행복해했었고 그 기억에 나의 인생 영상 중 하나가 되었다.


 업사이클링, 취미생활이 되다

 유학 초기, 금전적인 여유는 없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사회생활 할 때 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당시 골동품 상점에 가서 오래된 물건 중에서 나만의 보물을 찾는 것이 자그마한 행복이었고 자전거로 40~50분 걸려 찾아가는 동안 기대감에 어찌나 설레던지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러한 이중적인 상황의 덕분이었을까 나는 종이컵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사운드 스틱의 투명 우퍼 스피커를 이용한 조명과 어항, 빈병을 사용한 오브제와 수납병, 못쓰는 각재를 이용한 옷걸이 등 주변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버려지는 재료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재료를 조합하여 다수의 업사이클링 작품을 만들었다.

 업사이클링 작품 만들기는 어느새 늦깎이 유학생의 취미 생활이 되어 있었다.

늘 거기에 있었지만 미쳐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시선을 주어
매일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사는 재미라 생각한다.
- 박웅현, 광고 크리에이터 -
작품명 : 술병 가재(술병+클립), 2010

 이러한 취미활동은 논문을 집필을 시작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진정 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업사이클링이 열어준 인생 제2막

 2016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학에 교수로 초빙되면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져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일본 대학과 한국 대학의 속도 차이에 지쳐 대학을 나와 다시 건축설계 사무소에 들어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간에 쌓아둔 스트레스로 건강이 안 좋아져 수술을 받고 장기간 입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 한 동안 거동이 불편했던 몸의 상태는 다행히도 재활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호전되었고 회사 측의 배려로 재택근무 형태로 복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생활 패턴의 변화로 인해 금전적인 여유는 줄어들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이중적인 상황이 다시 찾아왔다.
 상황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유학시절 이후 그만두었던 즐거운 취미 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유학시절에도 그랬듯이 업사이클링 작품 활동이 갑자기 닥친 어려운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돼줄 것이란 희망과 믿음이 생겨났다.

 난 업사이클링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다행히도 그 시간과 과정을 즐기며 몰입할 수 있었고 결과물로 태어난 작품은 내게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업사이클링 취미 생활은 육체와 정신적 시련이 찾아온 어려운 시기에 나에게 제2의 인생 열어주었고 SNS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Since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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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업사이클링 취미생활은 주변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으로 변신시켜 나에게 의미 있는 물건(관계)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주변에 버려지거나 쓸모를 잃은 물건에 조금만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누구라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유캔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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