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브제 시리즈 #02
2021년 3월, 거의 10년 만에 다시 업사이클링 작품 제작하고 인스타그램에 공유를 시작한 지 벌써 2년 반이 지났다.
낫또 용기를 활용한 태양광 조명을 시작으로 다양한 조명 작품에서 티 틴케이스와 유리공병으로 만든 월E 와 나무도마와 쟁반으로 만든 도마쟁반 스피커까지, 늘어난 작품의 양만큼 팔로워도 늘고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늘어났다.
버려질 뻔한 사물과 재료들에 관심을 가지고 내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공유했을 뿐인데... 개인적 활동에 보내주시는 관심에 큰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고 감사해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작품 활동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부담감의 증상은 2주 또는 최소 한 달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올려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주변의 모든 사물에 과하게 관심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를 알기나 한 것처럼 친한 후배가 "형, 이번 작품은 좋은데, 또 숙제하듯이 하지 말고 즐기면서 해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학창 시절 유일한 무기였던 성실함을 바탕으로 숙제하듯 연애하던 결과가 좋지 않았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 맞아, 사물에 대한 관심도 사람관계처럼 숙제하듯 억지로 생각하는 것보다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볼 때 나에게 좋은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당분간은 주변 사물에 관심을 줄이고 작품 욕심도 줄여보기로 했다.
초시계(stop watch) : 운동 경기나 학술 연구 따위에서, 시간을 정확히 재는 데에 쓰는 시계.
이렇게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창작 욕심을 줄이며 생활하던 어느 날, 우연히 서랍 속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오래된 기계식 초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크기에 비해 묵직한 초시계를 꺼내 들고 거실소파에 앉아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이 초시계를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슷한 종류의 것을 국민학교 때 처음 보았다는 건 확실히 기억난다. 학교에서 100미터 달리기 시험이 있던 체육시간,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던 '아날로그 초시계'에서 들려오던 째깍째깍 소리가 맘을 재촉했었던 기억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뛰는 친구들이 출발선으로 나가면 앉아서 기다리던 내 심장이 얼마나 콩닥콩닥거리던지. 또, 중학교 때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초시계를 사용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에 들은 째깍쨰깍 소리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증폭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소리 모두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을 받았던 건 확실하다.
그런데 오늘 들으니 왠지 모르게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분명,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소리일 텐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마치 일상소음이나 백색소음과 같은 AR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듣는 것처럼 힐링이 된다.
무엇이 바뀐 걸까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 한 가지 확실히 다른 점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원래의 용도와 상관없이 그냥 듣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몇 초라도 빨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욕심을 내며 조바심을 가지고 반복해 누르던 초시계의 버튼을, 지금은 초침의 움직임과 소리가 좋아 시작과 끝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맘 가는 대로 누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디자인이나 작품 활동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본업인 건축디자인의 경우 설계를 맡긴 클라이언트의 맘에 드는 안을 제시하기 위해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또, 모든 경제활동이 그러하듯 돈이 결부되는 순간부터 기간 안에 달성해야 하는 과제가 되어 간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한 업사이클링 디자인 작품활동은 이와는 다르다. 같은 디자인 작업이라고 해도 업사이클링 작품활동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쟁과 욕심 없이, 그리고 타인이 정한 마감 일정도 없이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하고 내 판단에 의해 마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작품활동에 부담감을 느낀 건 이런 당연한 생각을 벗어나 욕심을 냈기 때문이었으리라.
앞으로 가끔씩 이런 초심이 흔들릴 때면 초시계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초침 소리에 멍 때리며 아무 생각 없이 잠시라도 말이다.
여러분도 초심을 잡아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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