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 안방에는 오디오 아니 전축(電蓄)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근무하시며 번 돈으로 사 오신 마란츠 전축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전자제품이었다.
당시 찍어둔 사진을 보면 턴테이블과 카세트테이프, 라디오가 통합되어 있던 모델로 해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그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거 같다.
당시 나이가 6~7살 정도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전축은하이파이 오디오로 한 차례 업그레이드 되었고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 아니 고집으로 수명을 다한 기계들을 수리하고 교체해 가며 인연의 끈을 이어간 결과,다행히도 당시에 사용하던 JBL 스피커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음악을 듣는 방식이 카세트와 턴테이블에서 CD로 바뀌었지만 가끔 오래된 LP판을 한 장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리면 지지직거리며 오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따뜻한 아날로그의 음색이 향수를 자극한다.
지금도 학창 시절 좋아했던 고(故) 유재하LP 앨범을 들을 때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이렇게 가끔은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인지 오래된 물건이나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것인지 혼동이 될 때도 있지만 음악감상이 나의 오래된 취미생활이자 친구란 것은 분명하다.
좌측 : 40여년된 JBL 스피커 / 우측 : 87년 건전가요가 있는 유재하의 재판LP
직접 만든 라디오로음악을 듣다
이런 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사람이 외출과 여행을 자제하던 2021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재활로 집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난 덕분에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칩거 기간 중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 놓고 재택근무를 하곤 했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광고가 여간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그러던 어느 날 방 한편에 방치되어 있던 라디오가 눈에 들어왔고 주저 없이 틀어서 주파수를 맞추었다. 광고로 음악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 냄새나는 사연을 읽어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어찌나 정감 있게 들리던지. 그 후로라디오 청취는 일상이 되었다.
당시 한창 업사이클링 조명 작품 만들기에 빠져있던 나는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만들었던 라디오 키트가 생각났고, 어느새 작업대 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DIY 라디오 키트와 스피커가 놓여 있었다.
키트를 한 땀 한 땀 납땜해서 키트를 완성한 후, 전원 스위치를 눌렀을 때 스피커를 통해 나왔던 조금은 투박한 음색의 음악과 반가운 아나운서의 목소가 주던 감동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첫 사운드 관련 업사이클링 작품 '한눈이'가 탄생했다.
작품명 : 애완 라디오 한눈이_초호기, 2020
이후, 블루투스 스피커 제작에 도전했고 기성 제품과는 다른 재료를 바탕으로 유니크한 음색을 내는 '월 E 사운드'와 '도마쟁반 사운드'와 같은 나만의 특색을 입힌 업사이클링 사운드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업사이클링은 나의 오래된 취미생활을 업그레이드시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주었다.
중국집 짜장면보다 취향에 맞추어 직접 만들어 먹는 짜파구리 맛이 좋다 그래서 나는 업사이클링 스피커를 만들어 음악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