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청년 농부 손자의 추억 저장고

글을 짓는 청년농부 조니

by 조니

작년 7월 말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할머니를 위해 급하게 본가로 복귀를 결정하였다. 7년 동안의 서울 생활을 접어두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왠지 아직 펼치지 못한 나의 꿈을 다시 땅속 깊숙이 꽁꽁 묻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고, 현재 본가 주변에 할머니, 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으시던 토지에 내가 무언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과연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과 막상 농부가 되더라도 작물을 심고, 관리하고, 수확하고,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가 줄어들듯이 걱정보단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무엇부터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하는 청년농업인 영농정착 지원사업이 있었다. 마침 본가로 내려갈 때 지원시기와 맞아 필요한 서류와 정보를 파악하고, 곧바로 신청서를 작성 후 제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류 합격 통보를 문자로 전달받았고, 원주 농업 기술센터에 방문해서 준비한 면접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2주 후 청년 농업인 영농정착지원 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내가 계획한 첫 번째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라 이 기쁨을 할머니께 가장 먼저 알려드렸고, 할머니께서는 “너한테 좋은 거지?" "정말 잘됐다"라고 말씀하시며, 지그시 미소 지우시던 할머니의 모습에 나의 기쁨은 오후 내내 집안 가득 더욱 증폭되었다.


농업인으로서 나의 미래는 단지 작물 재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연로하신 할머니와 함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농사이기에 내가 선택한 것이다.


지난겨울 할머니와 함께 올 한 해 심을 작물을 선정하고, 필요한 농사용품과 파종 준비 과정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여름, 가을에 있을 추수 준비를 위한 이야기 등 끊임없이 할머니와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할머니와 함께 나눈 소중한 이야기들은 곡식을 추수 후 대형 저장고에 보관하듯이 오롯이 할머니와 나와의 추억 저장고에 가지런히 저장된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이 상태로 건강을 유하시고, 함께 미소 지어지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더 알차고, 풍성한 추억 저장고에 다음 한 해의 이야기 추수를 기다리며, 오늘도 소중한 하루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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