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전면허시험 이야기
2011년 서울.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약 10분 만에 풀고 나와 100점을 받았다. 인생 첫 국가고시였던 운전면허 필기시험에서 내가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풀고 100점을 받았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아직 남아 있는 기능 시험과 도로주행 시험에 대한 아주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더군다나 나의 주변에 운전으로는 경력이 꽤 오래된 사람들이 '요즘 기능시험은 우리 때와 비교하면 너무너무 쉽지. 깜빡이, 출발, 정지만 잘하면 돼. 못 따면 바보.'라는 조언을 해준 터라, 나는 기능시험도 당당히 100점을 받고 오리라는 마음으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결과는 턱걸이 합격. 붙은 건 기분이 좋은 일이었지만 만족스럽진 못했다. 운전 선배들의 조언처럼 기능시험은 어렵지 않았지만, 내가 턱걸이로 합격을 한 이유는 '삐' 소리가 난 후에 액션을 취했어야 했는데 그 소리가 나기도 전에 기능 조작을 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제대로 했는데 감점을 연속으로 받게 되었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불안감은 굉장했었다.
기능 시험을 겨우 턱걸이로 합격하고 나니 도로주행은 거대한 산 같았다. 당시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의 코스는 총 A, B, C 세 가지(D코스도 있었나?)였는데 보통 A나 B코스로 시험을 본다는 정보를 얻고는 네이버 지도를 보며 이 두 개의 코스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은 도로교통공단 인증 시험장 중에 난이도가 가장 높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나는 밤낮으로 지도를 보며 길을 외웠다. 얼마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지 매일 밤 꿈속에서 나는 그 길을 운전하곤 했다. 이 순간만큼은 난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승차감을 선사하는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시험 당일.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경찰관이 옆자리에 탔다. 그리고 내 다음 수험생이 뒷좌석에 앉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괜히 학생주임 선생님께 불려 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제일 먼저 시트, 백미러, 사이드미러를 내게 맞도록 조정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운전대를 잡고 가만히 있었다. '출발하세요.'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가만히 있을 요량이었다. 기능 시험 때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모든 행동을 차분하게 그리고 천천히 하려고 노력했다.
시동 걸고 출발하라는 경찰관의 말에 심호흡을 하고 시동을 걸었다. 꿈속에서 그토록 내달렸던 그 길을 현실에서 달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시간이었고, 어디에선가 내가 누군지 확인시켜줘야 할 때 신분증 대신 운전면허증을 꺼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달리는 내내 경찰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아주 잘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대로만 하면 문제없어.'라고 나 자신을 속으로 격려하며 깜빡이를 켰고, 부드럽게 좌회전을 했다. 좌회전 후 맞이한 길은 이곳이 서울임을 증명하는 듯이 복잡했고, 긴 직선 코스였는데 신호등이 연속으로 세 번은 있었던 것 같다. 길이 직선이니까 정규 속도로 달리는 것 외에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겠다고 생각할 때쯤 교차로의 초록색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찰나의 순간을 겪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최소 단위인 '찰나'에 누군가는 참된 깨달음을 얻고, 누군가는 어물쩍대다가 정지선을 밟는다.
경찰관의 '내리세요.'라는 말에 나는 사거리 한복판에 내렸다. 그리곤 조수석으로 옮겨 탔다. 경찰관은 내가 신호운이 없었다며 그 망할 주황색 신호 앞에서 어물쩍거리다가 정지선을 밟으며 차를 세우지만 않았어도 도로주행 시험에 합격했을 거라고 했다. 정지선만은 밟지 말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는데 나는 급브레이크가 싫었다. 그것은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실수 같은 거라고 생각을 했다.(하지만 이제는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도 기술이며, 안전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점수표를 들고 조수석이 앉아 있는 경찰관이 앞으로 튕겨나갈 것이고 놀란 경찰관이 고개를 저으며 날 크게 감점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차라리 그냥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거나, 교차로를 그냥 지나치고 감점을 받았더라면 최소 '실격'이라는 불명예는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결국 나는 도로주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사를 하기 전에 서울지방경찰청이 찍힌 운전면허를 훈장처럼 갖고 내려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복잡하다는 서울 대치동 한복판을 주행하고 딴 '훈장 같은 면허증'을 말이다. 비록 그러진 못했지만, 나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몇 번의 주행 연습을 한 후 고향땅에서 마침내 운전면허증을 따게 되었다. 하지만 운전석에 쉽게 앉을 수 없었던 기간이 무려 9년. 면허증은 있지만 운전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 웃픈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이때부터 '차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하는 중대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