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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 Oct 27. 2022

혹은 우회하더라도

차선 변경 못해도 괜찮아.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있는 노란 차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서 내 차 앞으로 차선 변경을 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족두리에는 '도로주행'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도로 위에 핸들을 잡고 있는 모든 운전자들이 반드시 타야만 하는 노란색 자동차. 나는 그 차를 만날 때면 한번 더 눈길이 갔다. 서울에서 면허시험을 준비하던 때가 생각이 나서 그럴까. 서로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노란 차가 차선 변경을 망설이는 것 같아서 나는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속도를 더 낮춰주었다. 그러자 2초 후에 노란 차가 내 차 앞으로 들어왔다.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도 차선을 변경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고작 그 흰색 점선을 넘어가는 일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물론 차끼리 서로 부딪혀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무서웠던 것도 있지만, '너 뭐하는 짓이야!' 비켜!'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클랙슨(경적) 소리를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도 크다. 아직은 낯선 도로 위에서 비난받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차선 변경에 실패했을 때 나는 그냥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화살표 방향을 따라 달렸다. 그땐 목적지로 가는 것보다는 차선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도로가 한적 해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빨간색 신호등일 때는 정지선 맨 앞에 있는 차가 내 차가 아니기를 바랐고, 주황색 신호등일 때는 교차로를 넘어가는 마지막 차가 내 차이길 바랐다. 그래야 내 뒤로 쫓아오는 차들이 없을 테고 그러면 내가 차선 변경을 맘껏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살면서 이토록 꼴등이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비록 계획된 길을 따르는 것에 실패하고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했지만,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길을 다시 알려주는 든든한 동승자-얼굴 없는 내 친구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별일 없이 무사히' 온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겼다. '경로를 이탈하여~'라는 음성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여러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잃더라도 더는 전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골목을 돌고 돌다가 또다시 왔던 길 위에 서게 되어도 그냥 웃어넘겼다. 그렇게 길을 헤매며 버벅거리던 내게 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직진만 해도 길 잃을 일이 없어. 한 바퀴를 돌면 다시 제자리에 올 테니까. 제주는 섬이잖아?"


 다소 황당무계한 상상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물론 정말 길을 몰라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사람은 없겠지만-드물 거라고 해야 하나-, 그럴싸한 이론이었다. 도로 위의 각종 표지판과 화살표가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데도 나는 직진만 하라는 이 이론이 꽤 믿음직해 보였다. 제주에 있어서 그런가.

 사실 당장 차선을 바꾸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위치에서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신호를 놓치면 차분하게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되고, 가야 할 길을 지나오면 핸들을 돌려 유턴하거나 조금 돌아서 가면 되니 걱정할 것은 없다. 다만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간 더 길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회하더라도 괜찮다.

 하지만 운전이 미숙할 때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대로 자동차를 컨트롤하지 못한  순간에 마음이 무척 조급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초보 운전자라면 누구든  번은 느껴봤을 조바심. 옅게 들리는 경적소리도 전부 나를 향한 것만 같은  느낌. 아마 도로주행이라는 족두리를  노란색 차의 운전자도  차선으로 들어오기 전에 마음이 '콩콩' 했을 거다. 옆에 운전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타고 계셔서  콩콩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도로주행'이 적힌 족두리를 쓴 노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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