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 변경 못해도 괜찮아.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있는 노란 차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서 내 차 앞으로 차선 변경을 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족두리에는 '도로주행'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도로 위에 핸들을 잡고 있는 모든 운전자들이 반드시 타야만 하는 노란색 자동차. 나는 그 차를 만날 때면 한번 더 눈길이 갔다. 서울에서 면허시험을 준비하던 때가 생각이 나서 그럴까. 서로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노란 차가 차선 변경을 망설이는 것 같아서 나는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속도를 더 낮춰주었다. 그러자 2초 후에 노란 차가 내 차 앞으로 들어왔다.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도 차선을 변경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고작 그 흰색 점선을 넘어가는 일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물론 차끼리 서로 부딪혀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무서웠던 것도 있지만, '너 뭐하는 짓이야!' 비켜!'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클랙슨(경적) 소리를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도 크다. 아직은 낯선 도로 위에서 비난받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차선 변경에 실패했을 때 나는 그냥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화살표 방향을 따라 달렸다. 그땐 목적지로 가는 것보다는 차선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도로가 한적 해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빨간색 신호등일 때는 정지선 맨 앞에 있는 차가 내 차가 아니기를 바랐고, 주황색 신호등일 때는 교차로를 넘어가는 마지막 차가 내 차이길 바랐다. 그래야 내 뒤로 쫓아오는 차들이 없을 테고 그러면 내가 차선 변경을 맘껏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살면서 이토록 꼴등이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비록 계획된 길을 따르는 것에 실패하고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했지만,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길을 다시 알려주는 든든한 동승자-얼굴 없는 내 친구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별일 없이 무사히' 온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겼다. '경로를 이탈하여~'라는 음성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여러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잃더라도 더는 전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골목을 돌고 돌다가 또다시 왔던 길 위에 서게 되어도 그냥 웃어넘겼다. 그렇게 길을 헤매며 버벅거리던 내게 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직진만 해도 길 잃을 일이 없어. 한 바퀴를 돌면 다시 제자리에 올 테니까. 제주는 섬이잖아?"
다소 황당무계한 상상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물론 정말 길을 몰라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사람은 없겠지만-드물 거라고 해야 하나-, 그럴싸한 이론이었다. 도로 위의 각종 표지판과 화살표가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데도 나는 직진만 하라는 이 이론이 꽤 믿음직해 보였다. 제주에 있어서 그런가.
사실 당장 차선을 바꾸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위치에서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신호를 놓치면 차분하게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되고, 가야 할 길을 지나오면 핸들을 돌려 유턴하거나 조금 돌아서 가면 되니 걱정할 것은 없다. 다만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간 더 길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회하더라도 괜찮다.
하지만 운전이 미숙할 때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대로 자동차를 컨트롤하지 못한 그 순간에 마음이 무척 조급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초보 운전자라면 누구든 한 번은 느껴봤을 조바심. 옅게 들리는 경적소리도 전부 나를 향한 것만 같은 그 느낌. 아마 도로주행이라는 족두리를 쓴 노란색 차의 운전자도 내 차선으로 들어오기 전에 마음이 '콩콩' 했을 거다. 옆에 운전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타고 계셔서 덜 콩콩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