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크닉으로 느끼는 일상의 행복
내 차의 트렁크 하단 수납공간에는 차를 받기도 전에 미리 사 두었던 꼬리 텐트와 2열 창문 모기장, 자충 매트, 놀이방매트, 접이식 테이블 그리고 랜턴이 놓여 있다. 트렁크를 열고 2열 시트를 접으면 성인 두 명은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데, 운전석과 조수석을 앞으로 끝까지 밀고 1열과 2열 사이에 생기는 빈 공간에 차량용 놀이방매트를 올려주면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잘 수 있을 만큼 공간이 확장된다. 나는 이 공간에 앉아 있을 때면 마치 어렸을 적 책상 아래 또는 옷장 안에 들어가서 놀던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아이들은 왜 좁은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까. 엄마의 뱃속에서 느꼈던 포근함을 잊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몸만 커버린 아이인 걸까.
우리 집 현관 앞에 차박 관련 택배 상자가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이게 다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내가 구입한 물건들이 얼마나 신박한 것들인지에 대해 설명했고, 엄마는 그런 내게 '차에서 잠을 잔다고? 그냥 차에서 살아. 집에 들어오지 말고.'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셨다. 그럴 만도 하다. '차박'이나 '차크닉'이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보셨을 거고, 듣도 보도 못한 이런 문화가 생소하셨을 테니까. 그랬던 엄마가 요즘에는 -조수석에 앉아 있어도 충분하다고 말씀은 늘 그렇게 하시지만- 막상 내 아지트에 앉아 계실 때면 '좋긴 좋다. 셀토리 잘 샀네.'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신다. 아름다운 풍경도 한몫했겠지만 엄마의 마음속에도 히든 스페이스(hidden space)에 호기심을 느끼는 어린 감성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평소 바다가 보이는 괜찮은 장소를 발견할 때면 지도 어플에 차크닉 장소로 표시해 둔다. 종종 바다가 보고 싶은 날엔 그곳들 중에 한 곳을 찾아간다. 차의 후면이 바닷가 쪽을 향하도록 주차를 하고 트렁크를 열면 나만의 오션뷰 아지트가 생긴다. 옅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잔잔한 바람까지 불어주는 날에는 이만한 호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맛있는 간식과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더욱.
SUV를 갖게 되면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던 차박을 했을 때도 그랬다. 물론 무서우니까 안전하게 캠핑장 안에서 차박을 하긴 했지만, 차 안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트렁크를 열어 꼬리 텐트를 설치하고 입구 안쪽에 별 모양의 예쁜 조명을 달았다. 접힌 시트 위에는 편히 잠을 잘 수 있도록 푹신한 매트를 깔았고, 자동차 천장 손잡이에 랜턴을 달아 한껏 분위기를 냈다. 랜턴은 블루투스 스피커 겸용이었는데 잔잔한 재즈곡을 틀어두니 생각보다 근사하고 아늑한 아지트가 만들어졌다. 이날 날씨가 좀 쌀쌀해서 침낭 안에 핫팩을 넣고 잤는데 텐트 안에서 잔 일행들보다 내가 더 꿀잠을 잤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 아지트가 얼마나 괜찮은지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나의 바퀴 달린 아지트는 꿈과 낭만으로 가득 찬 다락방 같았다. 미셸 공드리의 영화 <마이크롭 앤 가솔린>에 나오는 바퀴 달린 집(완벽한 자유의 꿈을 이루고자 여행을 떠났던 주인공 테오와 다니엘이 몰고 다닌 집 모양의 드림카)처럼 말이다.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예쁜 추억과 낭만, 많은 이야기가 묻어있는 나의 아지트. 나는 그곳에서 마음을 나누기도 했고, 채우기도 했고, 비우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기도 했다. 자동차 트렁크가 내 삶에 이렇게나 큰 지분을 갖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누구 말마따나 나는 차가 아니고 집을 산 게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