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있는 운전자가 되기 위하여
앞 차가 비상등을 깜빡거렸다. 고맙다는 표현이었다. 내가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운전자와 이렇게 소통했을 때 이제는 양보를 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도로 위에서 온전히 '그저 하나의 운전자'로 스며든 것 같아 뿌듯했다. 그전까지는 멀리서 보면 내 차만 유독 눈에 띄려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은 내가 도로에 적응하지 못한, 마치 '전학생'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말이다.
마구잡이로 끼어드는 차를 보면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다가도 깜빡이는 비상등 불빛을 보면 이내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마치 내게 '진짜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어쨌든 고맙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창밖 구경만 하고 있을 때는 비상등이 이렇게나 요긴하게 쓰이는 줄 몰랐다.
운전 선배들은 매너 있는 운전자가 되기 위해서는 비상등을 적절히 점멸할 줄 알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아 동승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운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비상 깜빡이를 켜는 것을 종종 깜빡하곤 했다.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만큼은 잊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이럴 땐 깜빡이를 켜야 돼."
"아. 깜빡했다."
"깜빡이한테 깜빡이를 맡겼네."
운전대를 잡고 보니 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사이드 미러도 봐야 하고 전후방도 확인해야 하고, 신호등도 봐야 하고, 규정 속도에 맞게 달리고 있는지, 혹시나 다른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끼어들진 않을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게다가 딜레마 존(dilemma zone)에서 교차로를 넘어갈지 말지, 어느 차선을 타고 갈지, 어떤 방향으로 갈 건지 등에 대하여 결정을 해야만 하는 선택의 순간에 매번 직면해야 했고, 어떠한 선택들은 안전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신중해야만 했다. 마치 한 번의 선택으로 남은 인생에 변화가 생기는 일처럼 말이다.
베스트 드라이버까지는 아니더라도 혼자 운전하는 것에 많이 익숙해지면서 골목에서 마주오는 차를 만났을 때나 공사장을 지날 때, 주차할 때도 잊지 않고 비상등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매너 있고 옳은 운전 습관을 나의 오른쪽 귀가 닳도록 알려준 운전 선배들-도로 위에 그려진 주행유도선을 닮은 사람들-의 가르침 덕분에, 깜빡이는 더이상 '무엇을 잊어버리는' 깜빡이가 아니고, 다른 의미로 '라이트를 점멸할 줄 아는' 깜빡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