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앞에서 외치는 주문
차가 생긴 후로는 시간이 날 때면 외곽의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집을 찾아가거나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것을 즐겼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먼 거리를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은 따분한 일상 속에서 큰 행복감을 주었다. 정말 행복이라는 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출발을 위해 가속페달을 살며시 밟을 때도, 도로 위를 달리며 라디오나 음악을 들을 때도, 심지어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이상한 루트를 따라가다가 지도에 표시조차 없는 예쁜 장소를 우연히 발견할 때도 행복은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종종 멀리 돌아서 가거나 좁은 골목을 지나는 길을 알려주곤 한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거나, 새로 생긴 멋진 카페를 발견할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내게 고난을 주기도 했다. 제주시청에서 애월을 가는데 굳이 제주공항을 돌아서 가는 길을 안내해줘서 진땀을 뺐던 것처럼. 방향치라 아는 길을 다닐 때도 습관처럼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나이기에 내가 가는 이 길이 공항을 향해 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면서도 그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외곽의 바닷가 마을을 갔을 때도 그랬다. 그땐 아스팔트로 포장된 큰길을 두고 마을의 좁은 골목길로 안내를 받은 적이 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대로 달리다 보니 이미 골목 초입이었다. 양쪽으로 낮은 돌담이 쌓여 있는 좁은 골목길 앞에서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결국 도저히 좁아서 들어갈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을 했을 때 조수석에 타고 있던 언니가 말했다.
"가."
나는 돌담길 사이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상상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앵커의 얼굴 옆으로 골목에 낀 셀토리의 사진이 떠 있는 뉴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안 될 것 같은데?"
"무슨 소리? 여긴 탱크도 지나가."
나는 탱크가 얼마나 큰지 언니가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정말 탱크가 지나갈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했다. 얼마나 공간에 여유가 있었으면 그 많고 많은 차 중에 탱크를 골랐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과감히 골목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여유가 있네?"
"거봐. 여긴 탱크도 지나간다니까?"
이 날 이후 운전 중에 골목을 마주칠 때면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긴 탱크도 지나가.' 마치 처음으로 혼자 운전을 했을 때 엄마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던 것처럼 말이다. 좁은 골목 앞에만 가면 무의식적으로 외치게 되는 주문 같은 거라고 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매번 골목 앞에서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싶을 땐 혼자 마음속으로 대답하곤 했다.
'아니. 여긴 탱크 못 지나가. 티코*라면 모르겠네.'
(*티코; 90년대 국민차. 국내 최초의 경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