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는 새 차를 만들지.
인간은 노화를 최대한 늦추고 실제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자한다.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은 몸의 건강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탄력 있고 깨끗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초부터 기능성 제품까지 단계별로 피부에 화장품을 바르거나 어떤 경우에는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기도 한다. 어차피 늙을 건데 왜 이런 노력을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 사는 동안에는 젊게 살고 싶은 거고, 건강하고 깨끗한 피부로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이유일 거라 생각한다. 물론 자기 만족도 있을 테고.
자동차는 '탈 것'이고 '운송수단'이고 '소모품'인데 왜 그렇게 생고생하면서 손세차를 하는가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차피 늙을 건데 왜 씻고, 왜 화장품을 바르는 거야?'라고 반문한다.
'예쁘고 똑똑하고 비싼 큰 고철덩어리'를 정성껏 관리하는 이유는 많다. 우선 내가 깨끗한 차를 타고 싶고, 깨끗한 차에 사람들을 태우고 싶은 마음이다. 같은 거라면 새것과 중고 중에 새것을 고르는 것, 집에 손님이 오기 전에 방청소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차량을 잘 관리해두면 몇 년이 지나도 신차처럼 탈 수 있고, 만약에 나중에 중고로 팔 때도 값을 더 잘 받을 수 있다. 또 세차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마치 설거지를 하면서 잡념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종종 나를 유난 떠는 사람처럼 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유에 대해 연설 아닌 연설을 하곤 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세차장에 그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들은 각자의 베이에서 열심히 세차에 몰두하고 있는 세차인들을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처음 메가웨이브에 방문했을 때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 저 분무기! 너한테도 있는 건데?"
"어 맞아. 근데 저분은 프로의 냄새가 나."
"하하.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난 딱 보면 알지."
자동차 보닛(bonnet)을 열고 열을 식히는 동안 나는 트렁크에서 각종 세차 도구를 꺼내어 베이의 앞쪽 한구석에 나열했다. APC(all purpose cleaner; 다목적 세정제)를 물과 적정 비율로 희석하여 담아둔 압축 분무기도 꺼냈다. 나는 손바닥으로 앞쪽 휠과 엔진룸의 열이 어느 정도 떨어졌는지 확인했다.
"자, 휠부터 닦을 건데 브레이크 디스크의 온도가 높을 때 찬물을 뿌리면 연기가 나. 그렇게 되면 디스크에 변형이 올 수도 있으니까 열을 충분히 식히고 세차를 시작해야 돼."
나는 제일 먼저 휠과 타이어에 세정제를 뿌리고 타이어의 갈변을 제거했다. 그리고 휠 브러시로 휠을 닦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타이어에 케미컬을 뿌렸는데 순식간에 갈색의 액체가 흘러나오는 모습과 미술시간에나 쓸 법한 붓으로 자동차 휠을 닦는 것은 아마도 세차 견학생들에겐 신선한 경험이었을 거다. 하지만 휠을 닦고 나면 다리가 저린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휠에 케미컬이 말라 얼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휠을 세척할 때는 하나씩 닦고 바로 헹구어야 하는데, 그렇게 네 번을 쪼그려 앉아 있다 보면 다리가 저린다. 버킷 돌리(바퀴가 달려 무거운 버킷을 쉽게 이동시켜주는 도구로 뚜껑을 덮으면 간이 의자로 사용 가능)를 사용하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나에게 아직 돌리는 없다.
"본세차를 하기 전에 프리워시를 먼저 할 건데 내가 미리 압축 분무기에 알칼리성 APC를 희석해서 가져왔지. 쉽게 말해서 프리워시는 손을 대지 않고 화학적인 방법으로 차체의 오염물질을 없애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
"뭔 말이야?"
사실 나도 셀프세차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프리워시가 뭔지 잘 몰랐다. 세차 순서도 자꾸만 헷갈렸다. APC를 포함하여 세차에 쓰이는 케미컬의 종류가 매우 다양했고, 차량의 오염도와 그날의 체력, 시간, 상황 등에 따라 세차 프로세서가 사람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큰 틀은 같았지만 누구는 이렇게 해라, 누구는 저렇게 해라 하는 바람에 어려웠던 것 같다. 하물며 예습조차 하지 않은 세차 견학생들은 어떻겠는가.
나는 본세차를 위해 세차 버킷(bucket)에 절반 정도 물을 채우고 코니칼 튜브(conical tube; 소분 및 계량용 원심관)에 담아 온 카샴푸를 버킷에 부었다.
"이제 고압수로 헹굴 건데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듯이 쏴야 해. 차에 물을 뿌린다는 느낌이 아니고, 이물질을 다 날려버린다는 느낌으로."
"방금 버킷에는 뭘 넣은 거야?"
"카샴푸를 물에 섞은 건데 고압수로 잘 섞어줘야 돼. 손으로 해도 되는데 고압수로 해야 더 거품이 잘 생기고, 그렇게 하는 게 더 멋있지."
견학생들은 고압수를 쏘는 것이 힘이 들긴 하지만 물줄기가 차에 붙은 오염물과 세제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때 통쾌함과 재미를 느낀다는 것에 동의했다. 고압수로 카샴푸 거품을 만드는 게 멋있다는 것도. 하지만 견학생들에게는 스노우폼만큼 인상적인 거품은 없으리라.
스노우폼을 쏘는 것은 셀프 세차장을 처음 방문한 견학생들에게는 꼭 보여주고 싶은 퍼포먼스였다. 나는 3천 원을 추가하고 셀토리를 생크림 케이크로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스노우폼은 왜 뿌리는 거야?"
"세차 감성을 느껴 보라고."
"?"
"스노우폼으로 때를 불리는 거지. 목욕탕에서 때 밀기 전에 탕에 들어가는 거랑 똑같아."
정석대로라면 다시 고압수로 스노우폼을 씻어 내고 본세차를 해야 하지만, 이전에 깔끔하게 프리워시를 마쳤기에 거품이 가득한 버킷 안에서 몇 차례 조물딱 거린 워시 패드를 꺼내어 생크림 위로 차를 닦기 시작했다.
"이렇게 닦아내는 것을 미트질이라고 하는데 미트질도 위에서 아래로 해야 하고, 패드에 이물질이 붙어 있을 수 있으니까 패드를 미트 슬라이드에 자주 비벼줘야 하는 게 중요해. 이물질이 묻은 상태로 미트질을 하면 도장면에 스크래치가 날 수 있으니까."
미트 슬라이드는 버킷 안에 넣어서 사용하는 것으로 구멍 난 빨래판처럼 생겼는데, 워시 패드를 미트 슬라이드에 비비면 이물질들이 구멍을 통과해 버킷 하단으로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도구다.
"와 이런 것도 있구나. 별 게 다 있네."
"신기하지? 신기한 거 더 많은데 이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하지."
"나 뭐뭐 사? 세차용품 살 때 도와주라."
나는 알았다. 호기심에 나를 따라 세차장을 방문한 세차 견학생들이 셀프세차가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세차를 하는 행위에 묘한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