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세차 입문기
내가 셀프세차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차를 인수받기 약 한 달 전부터였던 것 같다. '예쁘고 똑똑하고 비싼 큰 고철 덩어리'를 잘 관리하려면 무조건 손세차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계식 세차는 자동차 도장면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데다가 손세차만큼 꼼꼼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인터넷에 셀프세차에 대해 검색을 해봤는데 케미컬(chemical)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세차 순서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정보의 바다에서 유영하는 친절한 분들의 도움으로 가장 기본적인 셀프세차 순서와 세차용품들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세차용품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도 되었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왁스아일랜드'라는 세차 용품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제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기도 했고, 샵의 사장님이나 직원분이 세차에 대해 아무래도 많은 것들을 알고 계실 테니 물건을 사면서 궁금했던 것들도 여쭤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왁스아일랜드에 들어갔을 때 사방에 보이는 수많은 케미컬들과 각양각색의 버킷들, 타월, 브러시를 보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나는 미리 적어간 세차용품 구매리스트를 보면서 하나씩 장바구니에 넣었다. 궁금했던 것들은 점장님께 여쭤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도 디테일링 세차를 즐기는 세차인들의 세상에 발을 담갔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내가 세차용품을 구입한 그날에 동네 세차장에 손세차를 맡겼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셀프세차장이라는 그 낯선 공간에 혼자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고압수가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고압수는 나를, 그리고 내 차를 해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고압수를 과대평가했고, 내 힘을 과소평가했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4만 5천 원을 내고 건너 건너 소개받은 업체에 손세차를 맡겼다. 몇 시간 후 차를 가지러 갔을 때 더러웠던 외관도 깨끗해 보였고 차를 탔을 때 좋은 향기가 나서 좋아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자세히 보니 곳곳에 잘 닦이지 않은 구정물과 차 내부 플라스틱 트림에 얼룩들이 보였다. 비용도 그렇고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 날 이후로 나는 무조건 셀토리(기아의 셀토스를 부르는 나의 애칭)의 목욕은 내가 시키겠노라 다짐했다.
집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세차인들의 성지로 불리는 '메가웨이브 실내 셀프세차장'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왁스아일랜드(세차용품 매장)와 메가웨이브(실내 셀프세차장)가 있다는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생각했다. '셀프세차를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구나.'
오빠의 도움으로 처음 메가웨이브에 발을 디뎠을 때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동차 전체를 뒤덮은 스노우폼이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리는 모습과 고압수로 시원하게 거품을 걷어내는 모습은 마치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법한 물총 싸움이나 비눗방울 만드는 놀이처럼 흥미로워 보였다. 고압수를 쏘는 것은 생각보다 손목에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차체에 붙어 있는 오염물들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때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고압수는 나를, 내 차를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강력한 물줄기는 나의 묵은 스트레스까지도 함께 날려주었다.
그 후로 세차를 하는 것은 일종의 취미생활이 되어버렸다. 초반에는 세차를 하고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도 세차를 해야 하나 싶을 만큼 그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세차를 마치고서 무력함을 느끼거나 울화가 치미는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봄에 황사가 불어 닥칠 때가 딱 그랬다. 도장면은 물론 와이퍼 위로 수북하게 쌓이는 노란 가루는 정말 꼴 보기가 싫었다. 이때쯤에 '과연 나는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세차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셀프세차에 발을 들인 후 처음 겪는 위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욕심이 불러온 위기였다는 것을 안다. 계절이나 날씨, 상황에 상관없이 내 차를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고 싶은 나의 허황된 욕심.
셀프세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와 같은 마음인 동지들을 꽤 많이 만났다. 하지만 세차 인생에서 갖은 풍파를 겪은 세차 선배들은 '세차란 자고로 비오기 전에 하는 것', '금방 더러워졌다면 다음 세차를 앞당길 수 있다.', '차가 적당히 더러운 상태여야 세차할 맛이 난다.'는 등의 명언을 남기며 격려했다. 정말 이것이야 말로 세차라는 수행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