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토리'를 향한 나의 애정
웬일인지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차 인수를 밤에 했기 때문에 아침에 제대로 다시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집 근처 어떤 자동차들 사이에 주차된 내 차가 혹시나 문콕을 당하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다. 차를 받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문콕은 피할 수 없다. 자연재해 같은 거다.', '네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박는다.', '처음에만 마음 아프지. 나중에는 신경 안 쓰게 된다.'는 조언 아닌 조언을 많이 해준 덕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말은 '넌 안 당할 것 같지?'라는 말이었다.
다행히도 차는 깨끗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말이다. 나는 주차를 할 때 웬만하면 평행주차를 했다. 문콕을 당할 확률이 가장 낮은 평행주차. 평행주차는 어려웠지만, 나는 평행주차를 사랑했다. 원래 사랑이란 어려운 법이니까. 물론 좁은 자리에는 들어갈 생각조차 안 했다. 주차장이 넓은 곳이라면 한 칸씩 띄워 세우거나 아예 왕따처럼 동떨어진 곳에 세우곤 했다.
운전 선배들은 '관리가 잘 된 차 옆'에 세우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얘기해주었다. 왜냐하면 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차를 아낀다는 말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차량에 흠집을 낼 확률이 낮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문콕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평행주차보다 안전한 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문콕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 차가 문콕을 당해서가 아니었다. 인력에 의한 문콕 말고도 내 차에 흠집이 나게 될 경우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달리다 보면 길 위에 있는 작은 돌이 차체에 튈 수 있다는 일명 돌빵부터 시작해서, 새똥, 나뭇가지, 고양이, 손톱, 가방, 옷의 자크나 단추 등 그 원인은 너무나도 많았다.
새똥 하니까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내가 운전 연습한다고 경차를 몰고 다닐 때의 일이다. 어떤 골목을 아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차 앞유리에 돌을 던졌다. '쿵'하는 소리에 너무나도 깜짝 놀라서 몇 초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어떤 XX가 돌을.'
나는 차에서 내려 앞유리를 확인했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뼈 조각이었다. 내가 지나가던 골목의 빌라 창문에서 누가 먹다 남은 뼈를 던진 건가 하며 빌라를 올려다보았는데 창문이 있는 쪽이 아니었다. 그 어떤 방향에서도 뼈 조각을 던질 사람은 없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는 바로 '새'. 내가 몰던 차에 돌을 던지고 사라진 '그 XX'는 '새'였다.
감당하지 못할 뼛조각을 물고 날아오른 새가 기어코 뼛조각을 땅 위로 떨어뜨리고, 그 조각이 골목을 지나가던 차 위로 떨어뜨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내가 몰던 차에 말이다. 나는 로또를 사야 하나 싶었다.
차를 몰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 운전 선배들이 해 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와닿았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 그래서 어느 정도는 마음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마음에 초조함이 생길 수도, 평온이 찾아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으니 셀토리를 향한 아침 인사가 훨씬 가벼워졌고 나의 마음도 그만큼 편해졌다. 처음에는 내 차가 밤중에 변(變)을 당하진 않았을까 하는 안절부절못한 마음에 꼼꼼히 살펴보며 긴 인사를 나누었다면, 이제는 가벼운 목례로도 충분한 사이가 되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