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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 Oct 24. 2022

거기 어디쯤에

몰랐던 아름다움을 만나다

 잠시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 괜히 주차장으로 가 시동도 걸지 않은 셀토리 안에 가만히 앉아 쉬기도 했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어디서든 잠시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말이다. 그럴 땐 아늑한 방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과도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충전기에 꽂혀 있는 배터리의 기분이 이럴까. 그 작은 공간이 뭐라고 내게 이렇게까지 위로가 되는 걸까.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어서 빨리 운전에 익숙해져서 도로 위를 쌩쌩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붐비는 차들 사이로 부드럽게 차선을 변경할 수 있고 한 손으로도 부드럽게 코너를 돌 수 있으며, 눈대중으로도 내 차를 세울 수 있을만한 공간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운전하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더 많은 곳을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달리는 것만큼이나 멈추는 것의 매력을 느꼈던 것은 그동안에는 알지 못했고 가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장소들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가끔 나는 내가 아름다움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오감을 통해 내 몸으로 들어온 이후, 제주에서 보낸 수년의 시간 동안 내 몸은 그것에 대한 항체를 만들었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 말이다. 육지에서 온 손님들이 공항에서부터 반겨주는 야자수와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할 때도 내 눈엔 '그냥 제주'였다. 탑동 광장에 다녀온 친구가 아르헨티나의 어떤 곳을 떠올리며 정말 예뻤다고 말했을 때도 나는 '탑동이?'라고 말했다. 가까이 있으면 그 존재의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는 말은 아름다움에 면역이 되어버린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하지만 운전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갈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여태 모르고 있었던 제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곳들의 이름은 '거기 어디쯤'이었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종종 '거기 어디쯤'에서 멋진 풍경을 만나곤 했다. 마치 예상치 않은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긴 야자나무가 가로등처럼 줄지어 있는 해안도로, 안개가 자욱한 중산간의 어느 목장, 작고 예쁜 들꽃들로 가득한 도롯가의 어떤 꽃밭, 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 배 앞으로 제주시내의 밤 풍경이 한가득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여태 알지 못했던 풍경들을 마주하며, 나는 '꽤 오랜 시간 둔감했던 나의 오감‘으로 침투하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네 개의 바퀴를 부지런히 굴려주는 셀토리 덕에 나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내가 닿을 수 있는 세상도 그만큼 넓어졌다. 배밀이를 하며 기어 다니다가 시간이 지나 걸음마를 배우고 두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큰 세상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운전은 나를 성장시켰고,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려고 9년간 장롱에 묵혀 두었던 운전면허증을 탈출시켰던가. 앞으로도 많은 길 위를 달리고 멈추며 또 어떤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내가 '거기 어디쯤'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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