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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 Oct 13. 2022

해방의 두 가지 의미

달릴 때와 멈추었을 때

 엄마가 타고 다니시는 경차에 보험을 추가로 가입하고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후 열심히 타고 다녔다. 겨우 장롱면허 딱지를 떼었는데 다시 붙이면 안 되니까 매주 일요일은 꼭 내가 차를 쓰겠다고 말해두었다.

 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 번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언니네 집을 가더라도 운전을 꼭 하려고 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허리를 좌석 등받이에 대지 못하셨다. 엄마는 오른손으로 도로 위 자동차와 신호등, 표지판을 가리키며 이럴 때는 어떻고, 저럴 때는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면서도 왼손은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언제든 막아줄 것처럼 항시 대기 중이었다. 위기의 순간에 조수석으로 팔을 뻗는다는 것은 운전 고수들이나 할 수 있는 '멋' 아니면 '쇼맨십'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엄마가 뻗는 팔은 '본능'이며 '사랑'이었다.

 편하게 앉아 있어도 된다는 나의 말에 알았다는 대답을 하시면서도 실시간 도로 상황과 함께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예측까지 쉴 새 없이 방송을 하셨다. 세상 어떤 교통방송보다 정확했던 엄마의 조수석 이원방송은 내가 자동차 기어를 P에 놓아야만 끝이 났다. P단이 곧 OFF 버튼이었던 거다. 라디오 방송을 마친 엄마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셨는지 두 팔을 내리고 온전히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대어 깔깔 웃으셨다. 그러다가 곧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씀하셨다.


 "운전은 항상, 항-상 조심해야 돼. 이제는 운전이 괜찮아졌다고 생각이 들 때 꼭 사고가 난다니까? 그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돼.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운전에 대한 감이 익었을 때쯤 혼자서 차를 끌고 다녔다. 그전에 언니네 집까지 나 혼자 운전을 하며 몇 번 다녔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혼자 타봐야 운전실력이 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였다. 언제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지 내가 스스로 판단해야 했고, 혹시나 모를 돌발상황에도 대비를 해야 했다. 의지할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비게이션과 이명처럼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혼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매우 떨리는 일이기도 했지만 굉장히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원한다면 언제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기동력이 내게도 생겼기 때문이다. 기동력은 곧 해방이었다. 버스 노선과 정류장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도로가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픽업하거나 집에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과 당근마켓에서 필요한 물건을 발견했을 때, 판매자에게 구매를 예약하고 직접 가지러 가겠다는 메시지를 당당히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내게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것 이상의 기쁨을 주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핸드브레이크를 올리고 P단으로 기어를 옮겨 시동을 끈 다음, 차에서 내려 제일 먼저 주차된 차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엄마와 언니한테 카톡으로 보냈다. 잘했다는 칭찬을 받는 것도 기분이 좋았지만, 그 둘을 안심시켰을 때 비로소 나와 자동차가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정말 안전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확신 같은 거였다. 처음에는 잘 주차된 차도 괜히 조금씩 움직이는 듯하게 보일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땐 시동이 꺼진 게 맞는지, 기어를 P로 옮긴 게 맞는지, 차 문을 잠갔는지에 대한 의심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차를 마치면 항상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잘 세운 차도 다시 보자는 의미였다고 나 할까. 어쩌면 내가 정말 차를 안전하게 잘 세웠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기어코 주차를 잘했다는 답장을 받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고, 달릴 때와는  다른 해방의 의미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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