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한 찰나의 데이트들
맞벌이를 하면서 육아를 한다는 건, 애쓰지 않으면 해야 할 말만 하다 하루가 끝나는 것과 같다.
기저귀 갖다 줘, 세탁기 안에 있는 빨래 좀 널어줘, 아기 빨대컵 좀 씻어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서로에게 끊임없이 ‘해달라’는 얘기만 하게 된다. 농담이나 가십거리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육아는 부부관계에 거의 모든 것이 달려있지만, 동시에 육아로 인해 부부 사이는 멀어지기 쉽다. 그래서 두 사람만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퇴근한 뒤 아이를 돌보면서 해야 할 일을 다 해내기도 벅차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악착같이 그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단 30분이라도.
캠퍼스 커플이어서 매일 같이 만나다가 남편이 학사장교로 입대하면서 처음으로 장거리 연애를 했다. 남편은 진해에, 나는 서울에.
짧지만 한 달 넘게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우리 악착같이 만나야 한다.”라고 했다.
돈 아끼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니 이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만나자는 철든 소리, 철든 척 좀 그만하자고.
그렇게 하나씩 포기하는 순간 관계 자체도 서로에게 덜 중요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악착같이 만났고, 돈도 시간도 말 그대로 왕창 썼다. 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돈도 없던 그때, 우리는 텅 빈 통장 잔고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우리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렇게 악착같이 만나던 우리는 8년 차 부부가 됐다. 얼마 전,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날, 남편이 일찍 퇴근하면서 ‘데이트 할래?’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악착같이 만나자고 했던 게 무색하게 나가기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재택근무라 씻지도 않았고, 어린이집 픽업까지 한 시간도 안 남은 상황이었다. 이 다정함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 끝에 답장을 보냈다.
‘주차장으로 바로 갈게.’
집 근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어린이집 픽업 전까지 남은 건 고작 30분. 주문하고 음료 받아 홀짝 마시고 말 한마디 나누면 끝나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30분밖에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남편은 굳이 집이 아닌 카페에 가자고 했다. 남편은 알았을 것이다. 집에 있었다면 별 것 안 하고 그냥 지나갔을 시간이었음을.
하지만 남편은 이 시간에 '데이트'를 하자고 해주었다. 먼저 나가자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바깥에서 둘이 보내는 시간은 오랫동안 없었을지도 몰랐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적다’고 생각하는 대신 데이트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준 남편 덕이었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셋이 떠날 여행 일정을 세웠고, 요즘 각자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나누며 웃었다. 짧아서 아쉽고, 그래서 더 밀도 있었다.
요즘도 가끔 찰나의 데이트를 할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집을 나선다.
해야 할 집안일보다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이 가정의 시작이자 뿌리가 우리 두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 일과 육아에서,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갖고 있는 어려움을 나누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결국 우리가 이 삶을 함께 헤쳐나가는 동반자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엄마 아빠에게도 아무런 이슈 없이 연애할 때처럼 ‘그냥’, ‘좋아서’ 만나는 둘 만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함께하는 것’은 관계의 본질이고, 그것을 뿌리 삼아 부부와 아이가 하나의 가정으로 자랄 수 있을 테니까.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들이 늘어날수록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때론 악착같은 노력도 필요하다. 언젠가 그런 악착같음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