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 동생의 결혼식을 앞두고, 한 달째 윤종신의 노래 <오르막길>을 읊조리고 있다. 동생이 축가를 해달라고 하기에 “오르막길 어때?”라고 했더니 동시에 동생이 대답했다. “나도 그 노래 부탁하려고 했어!”
결혼 8년 차, 만난 지 12년째가 되었지만 육아라는 과정을 겪으며 서로의 다른 점이 전보다 뚜렷이 보인다. 그것이 때론 서로의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하지만, 때론 밑바닥을 보일만큼의 개싸움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만난 지 12년이 되어도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놀랍다. 아니 그럼 도대체 언제쯤 괜찮아지는 거야?
언젠가는 싸우는 게 지긋지긋해 솔직한 마음을 감추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종일 내가 남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싸우는 게 두려워 불편할 때에도 마음을 솔직히 꺼내 놓지 못한다면, 이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솔직하게 얘기하고 싸움을 각오하는 편을 택했다.
괜찮을만하면 나타나는 부부 싸움의 고비를 어떻게 하면 잘 넘길 수 있을까. 성경에서 사랑을 설명한 구절의 시작이 “오래 참고”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행되어야 할 방법은 하나 뿐이다.
상대의 다른 점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것. 세상에 같은 인간이란 하나도 없기에 성격 차이는 관계에서 필연적인 것이므로.
아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매주 싸웠을 것이다. 육아란 밑바닥을 알게 해주는 지독한 인내심 훈련과도 같아서, 서로의 낯선 모습을 종종 마주한다. 그럴 땐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며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걸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자기 전에 손을 잡고, 서로의 품에 얼굴을 묻고, 서로의 몸에 몸을 기대어 한몸인 듯 잠에 든다.
곧 헤어질 것 마냥 싸웠다가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손을 잡고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 내 밑바닥을 보여주게 되더라도 그는 언제나처럼 내 곁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이것이야말로 나를 붙들어주는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괜찮아. 고생했어.”라는 말보다 나의 살과 체온과 냄새와 숨소리를 가만히 내어주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이 그가 가진 불안과 조급함을 잠깐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위로의 포옹.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있을 것이라는 걸 증명하는 몸과 몸의 고요한 만남.
문득 <오르막길>을 흥얼거리다 눈물이 불쑥 나와버렸다. 결혼은 인생이라는 오르막길을 함께 걷기로 다짐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그만큼 뜨거운 약속임을 이제는 알기에. 잘 부르진 못해도 진심을 담아 불러줄 수 있을 것이다. 다투면서도 함께 걸었기에 이만큼 올라올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올라온 만큼 이 길이 아름답다는 걸 아니까.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