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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Sep 17. 2021

모든 글은 뭐라도 ‘쓰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가이드

"시인이든 작가든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뭔가 쓰는 순간, 되는 거지."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김연수 작가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기록과 글쓰기의 힘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 시인 유이치의 입을 통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시인이든 작가든 될 수 없고, 반드시 뭐라도 ‘쓰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얘기를 들은 소설의 주인공 카밀라는 쓰는 용기를 낸 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요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모두가 글을 쓰지는 않는다.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일 수도 있고, 시간이 없어서 일 수도, 혹은 한 호흡에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껴서 일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콘텐츠 기획을 해왔지만 나 또한 정작 내 얘기는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몰랐다. 몰랐던 탓에 글쓰기 책들을 사서 읽기도 하고, 그 책들이 가르쳐주는 것처럼 좋은 글을 많이 읽고 필사도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느리지만 꾸준히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기 시작했고, 나의 글쓰기 패턴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나처럼 글을 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보다 내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쓰기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의 글쓰기 패턴을 3가지로 정리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안은 구린 게 지극히 정상이다. 일단 시작하면 좋아질 일만 남았으니 처음부터 잘 써야 한다는 부담부터 버리자.




1. 자신이 언제든 기록하기 쉬운 도구를 찾자.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빨리 휘발된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은 감정, 글귀, 상황이 있을 때는 바로 기록하는 게 가장 좋다.



잊기 전에 기록하려면, 남이 추천하는 도구가 아닌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기록 도구'가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기록 도구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록을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손으로 쓰는 게 편한 사람은 자신이 선호하는 사이즈 및 재질의 노트와 펜을,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쓰는 게 편한 사람은 메모앱이나 SNS, 메신저앱(예: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도구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핵심은 '내가 언제든 부담 없이 쉽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써보고, 나의 것을 찾는 것이다.






나는 휴대폰에 기록하는 게 가장 편해서, 인스타그램, 메모앱, 브런치를 각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



- 인스타그램: 오픈된 기록 도구여서 누군가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엔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군더더기는 덜어지고 생각이 차분히 정리되어 좋았다. 그래서 작성하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스타그램에 주로 기록한다.



- 메모앱: 누가 보지 않기 때문에 차분하게 정돈된 형태로 쓰긴 어렵지만 나에게 유익한 정보들을 아카이빙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노션을 쓸 수도 있지만, 아직은 관심사 별로 폴더링해놓고 일단 저장해두기 편한 메모앱이 편하다.



- 브런치: 브런치 매거진에 알맞은 글감이 생각났을 때는 브런치앱을 열고 '글쓰기' 버튼을 누른 뒤, 타이틀과 내용을 키워드 중심으로 짧게 남겨 놓고 저장해둔다. 글쓰기가 막막할 때 '작가의 서랍'을 훑어보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2.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움직였을 땐, 한 문장이라도 쓰자.

좋은 글감은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움직였을 때 나온다고 믿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티저 이미지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기쁨이, 슬픔이, 분노, 두려움, 까칠이가 그 마음의 좋은 예다.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를 내는 감정이 있다면, 당시 상황과 그때 느낀 감정을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키워드 몇 개, 한 문장이라도 좋다. 이렇게 모인 기록들은 조금 더 큰 단위의 기록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재료가 된다.



키워드를 연결하면 한 문장이 되고, 한 문장에서 한 문단으로, 한 문단에서 글 한 편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면서 데이트 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어린이집 아이 픽업까지 1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굳이 카페에 가자던 남편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엔 주말마다 하는 카페 데이트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우연히 생긴 아주 짧은 시간에 카페 데이트를 하면서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그래서 그 시간에 느낀 점들을 기념처럼 기록해두었다.







상담을 갔다가 의사 선생님 앞에서 처음으로 울었던 날, "집안일을 줄이면 좋겠어요."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도 울어버렸다. 이런 내 모습이 당황스러워서,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괜찮은 부모이고 싶은 내 마음을 다짐처럼 기록했다.



위의 예시들처럼 너무 사소해서 누구한테 말하기도 뭐한 마음들을 한 문장, 한 문단으로 써본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모든 경험은 글쓰기의 재료이자 자산이다. 경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얘기들이 있기에 그렇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가짜가 아닌 ‘진짜’여서 더욱 그렇다.




3. 기록들을 엮어 글을 완성하자

한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가치관 등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기록들이 쌓이면 몇 가지의 주제로 묶을 수 있다. 묶이는 주제의 기록들을 살펴보고, 몇 가지를 선택해서 한 편의 글로 구성하면 된다.



재료가 많아야 해 먹을 수 있는 요리 가짓수가 많아지는 것처럼, 기록이 많이 쌓일수록 글쓰기가 더욱 쉬워지고 쓸 수 있는 얘기도 많아진다.



나와 같은 워킹맘이라면, 경력 관리, 시간 관리, 육아, 부부 관계 등의 주제로 기록들을 그룹핑할 수 있다.



위에 첫 번째 예시로 들었던, 카페 데이트를 하고 썼던 한 문단의 기록은 몇 년 전 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할 당시에 페이스북에 썼던 ‘관계의 효율성에 대하여 - 악착같이 만나야 한다’는 제목의 기록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관계의 핵심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



그 두 개의 기록 조각들을 이리저리 배치해보고 살을 붙여 <악착같이 데이트하는 부모입니다> 라는 글을 완성했다.



두 번째 기록의 예로 제시되었던 의사 선생님께 집안일을 줄이라는 얘기를 들은 날 이후, 남편과 로봇청소기/건조기의 도움으로 집안일 스트레스를 극복해나갔다. 기록에 극복 과정을 더해 <의사선생님이 집안일을 줄이라고 했다> 는 글을 썼다.



내가 쓴 모든 브런치 글은 아주 사소한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이 글도 인스타그램에 쓴 포스팅을 확장한 것이다.



어쩌면 신이 이야기 하는 것을 받아쓰는 선택받은 자가 아닌 이상, 기록이라는 재료 없이 글을 짓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한 문장이라도 써야 한 문단이 되고, 한 문단을 써야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문장이라도 써보자. 모든 글은 뭐라도 ‘쓰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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