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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Nov 08. 2021

박사님도 워킹맘이었다니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나도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다 버스가 끊길 길을 걷고 또 걸어 집에 들어간 적도, 아예 조금 더 기다렸다 새벽 첫차를 탄 적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돌봐야 할 자식들이 있으니 정해진 시간이 되면 퇴근해야만 한다. 이제 막 집중을 좀 해보려는데 집에 갈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손놓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정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기 직전에야 닥치는 대로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들고 뛰쳐나간다. ...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님을 처음 본 것은 오랜만에 켠 TV에서 우연히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보았을 때였다.



심채경 박사님은 K-로켓 나로호 발사를 며칠 앞두고 김상욱 교수님과 함께 우주와 달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재미있게 설명하는 젊은 여성 박사님이었다.



홀린 듯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멋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음 날 바로 박사님의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구입했다.



특별한 계기 없이 흘러 흘러 지금의 천문학자가 되었다는 박사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어나가던 중, 한 학생에게 보낸 이메일 답장을 옮겨둔 페이지에서 익숙하지만 왠지 박사님의 책에는 있어선 안될 것 같은 단어 - '출산휴가'를 발견했다.



"나는 지난달부터 출산휴가중이에요. 아이는 예쁘지만, 남들은 열심히 연구하는데 쉬는 동안 뒤처지지 않을까 조바심도 나요. 나도 K씨처럼 한 템포 쉬어가는 방학이라 생각해야겠네요. 잘 쉬고 나면 다시 잘 달릴 수 있겠죠?"



박사님도 워킹맘이었다니. 동지를 만난 반가운 마음에 박사님이 친근하게 느껴졌고, 또 다른 워킹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한편으론 그녀가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 상상되어 감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곳곳에 마킹해둔 박사님의 책과 일상의 기쁨을 잊지 않으려는 노트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다."

얼마 전, 회사 동료가 둘째 육아휴직까지 마치고 오랜만에 복직을 했다. 회사에 워킹맘은 나뿐이어서 그녀의 복직을 나 또한 얼마나 응원하며 기다렸는지 모른다.



복직을 며칠 앞둔 어느 늦은 밤,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복직한다는 소식을 주변 지인들이 '애 놓고 돈 벌러 갈 만큼 돈이 급하냐,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애 둘 잘 키우면 되지 않냐'는 말도 안 되는 오지랖을 부린 모양이었다.



게다가 첫째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떠난 3년 전과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아이 둘을 돌보며 일하는 환경에 처음 놓인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런 말 신경 쓰지 마요. 엄마가 열심히 사는 거 아이들도 다 느껴요. 소홀해질까 걱정이겠지만 엄마도 아이들 못본 시간 만큼 더 열심히 챙기게 되고요. 일단 복직 해보고, 그래도 애들이 눈에 밟혀서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봐도 돼요. 그래도 방법은 찾으면 있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요! 우리한테 아내, 엄마의 삶만 있는 거 아니니까요. 우리 몫의 삶도 살아내자고요. 인생 한번뿐이니까."



책에 다 쓰여있지 않지만, 박사님도 계속 연구하는 과학자로 살기까지 무례한 오지랖을 자주 마주해야 했던 것 같다.



겪어보니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다." 엄마에게 사회란 그렇다.



"물론 아픈 아이를 돌보는 데에 엄마가 유리한 점도 있다. 여성이 상대방의 정서에 더 잘 공감해주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남자보다 조금 더 잘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아플 때 엄마를 더 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엄마가 돌보면 더 좋은 이유'는 될 수 있어도 '엄마가 돌보는 게 당연한 이유'는 아니다."




우리 사회엔 더 많은 워킹맘이 필요하다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고, 그래서 일하는 엄마에게 “애는 누가 봐요?”라고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엄마들이 곁에 있다는 걸, 그리고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일하는 엄마들이 늘어난다면, 주변의 오지랖에도 불구하고 일할 방법을 찾아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엄마들이 있을 테니까.



나는 복직 후, 내 이후에 복직할 또는 임신을 할 수도 있는 동료 직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회사에서도 처음 있는 워킹맘으로서, 회사가 편견 없이 그럼에도 필요할 땐 배려할 수 있게 ‘잘’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겐 작은 힘이 되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심채경 박사님의 워킹맘 커밍아웃은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책에서 워킹맘이 겪는 어려움을 부러 언급해주어서 더욱 감사했다. 이 책이 많이 팔렸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엄마들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전과 같은 경력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얘기되어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많은 계란이 모이면 바위에 작은 금이라도 생길 거라 믿는다.



“그러니 연구실에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으며,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잊어도 되는 밤.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한 가지 주제에 오롯이 집중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 그런 밤. …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그 누구도 심채경 박사님이 달과 별과 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을 순 없었다.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일하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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