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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Nov 19. 2021

아프면 안 되는데요

부부 에너지양 보존의 법칙

결국 입원을 했다

어느 날부터 이마와 머리가 찌릿거렸다. 곧 두통도 찾아왔다. 맞벌이 육아러들의 삶이 그렇듯, 스트레스에 자는 시간이 부족해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편도까지 심하게 부어버렸다.



“요즘 많이 피곤하거나 잠 못 자는 일 있으신가요?”



1초 간 정적. “매일 그런데요?” 워킹맘은 멋쩍은 듯 웃었다. 1년에 한 번은 인후두염을 심하게 앓기에 예방 차원에서 휴가를 내고 찾은 병원. "무조건 쉬어야 나아요. 쉬세요."라고 하신다. 저기… 제가 몰라서 안 쉬는 게 아니거든요.



한편 찌릿함과 두통은 심해졌다. 두통으로 잠도 못 잘 지경이 되자 오후 늦게 신경과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피부과. 대상포진 확진을 받았다.



참나. 일하고 육아하는 거 세상에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뭐했다고 인후두염에 대상포진까지 걸린 거냐. 뭐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아플 일인가. 스스로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이렇게까지 내몰린 내 몸뚱이가 불쌍하던 찰나, 의사 선생님이 덧붙였다.



“시력과 청력으로 후유증이 올 수 있는 '얼굴 대상포진'이라 최소 1주일은 무조건 입원 치료를 해야 해요.”



'입원' 얘기를 듣는데 머릿 속에 세 사람이 차례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곧 돌을 앞둔 어린 아들, 그 다음은 당시에도 육아와 일 병행을 버거워하고 있던 남편, 마지막은…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 엄마.



다음 주에나 올라올 수 있다던 엄마는 둘째 치고, 남편은 구내염이 심해져 먹지도 발음도 제대로 못할 만큼 아픈 상태였다. 그런 남편이 아이를 혼자 보게 할 순 없었다. 입원을 강권하던 의사선생님께 이래저래 통원 치료를 우겨댔다. 하루 세 번, 시간에 맞춰 병원 주사실에서 항바이러스제를 맞겠다는 조건이었다.



주사 바늘을 꽂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서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유일한 육아 동지가 아픈 마당에 입원할 여유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 저녁을 먹이고, 퇴근하고 온 남편과 바통 터치 후 병원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 새에 막힌 혈관은 새로 바늘을 꽂을 때마다 타들어가듯 따가웠다. 식염수로 뚫고, 안되면 다른 혈관을 찾아 헤맸다. 밤새 얼굴과 머리 통증이 심해져 눈까지 뜰 수 없게 되자, 결국 다음 날 입원했다.







퇴근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근처에 사시는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병원에 온 남편. 나는 미안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고생은 같이 하는데 티가 나게 아픈 건 언제나 나여서 미안하다고.



"매번 참 무력하네."

- 너무 자책하지마, 여보. 평소에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아픈 거야.



입원실에 필요한 물건을 갖다줄 때도 내가 좋아하는 죠리퐁을 잔뜩 사다가 짐 가방에 넣어둔 남편.




조잡해보여도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던, 감동의 죠리퐁 2개 크으 -




입원을 미뤘던 건 아픈 남편에게 더 큰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넣어둔 죠리퐁을 보면서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꾹 참고 아픈 나를 더 생각해준 남편이 고맙고 동시에 안쓰러웠다. 얼른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남편을 한번 더 생각해줘야지, 다짐했다.



아이가 아프면 두 사람이 힘을 똘똘 뭉쳐 병수발을 들면 되지만, 어른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아프면 그땐 비상이다. 그간 맞벌이 육아를 가능하게 했던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몇 일도 버틸 수 없다.



해야 할 일은 쉬지도 않고 매일 찾아온다. 할 일도, 부부의 에너지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한쪽이 아프면, 다른 한쪽이 아픈 사람의 몫까지 에너지를 내야 한다. 거기에 아픈 사람까지 돌봐야 하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하게 된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미안하고, 아닌 사람은 아닌 사람대로 괴로운 상황. 그리고 아닌 사람이 무리해서 다시 아프게 되는 돌고 도는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서로를 돌보는 것이 결국 나를 챙기는 것

맞벌이 육아를 지속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아프지 않게 몸과 마음을 챙기는 일이다. 스스로를 돌볼 뿐 아니라, 육아 동지인 파트너의 몸과 마음의 건강도 헤아려야 한다. 이것도 결국은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지지해주고 지탱해주느냐에 달려있다.



남편도 사람이기에 이렇게나 자주 병치레를 하는 내가 버겁고 이해할  없을 때도 있지만, 아픈 사람 앞에서 짜증내기 보다는 되도록 쉬게해서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현명한 처사라는  이제는 경험으로 안다.



누군가 아프다면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서로의 목소리와 건강 상태에 귀를 기울이자. 업무와 육아 스트레스 속에서도 평소에 서로에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신경 써서 할 수 있다면, 누군가 아픈 일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며칠 전 새벽, 자다 깨서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잠 못 드는 나를 남편은 꼭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어? 괜찮아. 편하게 다 얘기해봐. 지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일보다는 네가 우선이야."



결국 밤을 꼬박 새고 출근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 나은 것 마냥 마음이 편안했다. 육아 동지가 아프면 짜증이 먼저 날 법도 한데, 언제나 내 힘듦에 다정하게 반응해주는 남편이 있어 조금 더 해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긴다. 이 힘든 길을 나 혼자 걷는 게 아니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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