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육아에서 우리를 지키는 법
맞벌이 육아를 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이유 말고는 쉬려고 휴가를 쓴 적이 없던 우리였다. 그렇게 6개월을 달렸고, 피로가 그만큼 누적되었다. 둘 다 일하고 지친 상태로 퇴근해서 육아를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늘 예민해졌고, 우리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렀다.
먼저 (칼퇴하고 달려와 하원까지 한) 퇴근한 사람은 나중에 (역시 칼퇴하고 달려온) 퇴근한 사람에게 못난 말을 쏟아낸다. 못난 말을 들은 사람도, 상대가 힘들어서 그랬을 거라는 걸 알지만, 받아줄 여유가 없어서 못난 말을 다시 튕겨낸다.
아이는 우릴 보고 웃으며 끊임없이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데, 같이 웃어줄 자신이 없어 고개를 떨군다. 아이 덕에 날 선 대화가 어색하게 마무리되면 또다시 어색하게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는 미안함을 꺼내놓는다. 이후, 오가는 말 없이 고요한 적막이 찾아온다.
행복한 순간이 힘든 순간을 잊게 하지만, 너무 힘들면 행복한 순간이 없었던 것만 같다. 아이 낳기 전엔 사이가 좋았다. 연애 4년, 결혼 5년. 9년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유지하며 우리만의 재미와 룰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육아를 시작하고 난 후, 우리 관계가 조금씩 틀어졌다.
처음엔 일하러 간 남편을 하루 종일 기다리며 혼자 아이를 돌보던 게 힘들어서 그랬고, 나도 일을 시작하고 나니 그냥 모든 게 다 힘들어서 그랬다. 퇴근 후 엄마만 찾는 아이에게 온통 신경을 쏟다가 재우고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와 이유식과 청소와 빨래와 등원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나눠서 해도 씻고 누우면 11시가 넘었고, 그마저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한 채 침대에 쓰러져 기절하기 일쑤였다. 어느 순간 우리 둘은 필요한 말만 하고 있었고, 멍하니 TV만 보다 잠들었다.
적어도 나는, 이런 상태를 유지하며 계속 같이 살 자신이 없었다. 내 영혼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해야만 했다. 이렇게는 안된다는 생각에 결심했다.
억지로라도, 힘을 쥐어짜서라도 먼저 퇴근해서 하원 후 아이를 돌본 남편에게 '고생했다'라고 얘기하기로. 고생했다고 말하며 안아서 등을 토닥여주기로.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말이, 너무 지치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아서 나름의 결심을 해야 했다.
힘들어서 예민해지는 거고, 그 고생을 알아주면 뾰족함이 조금은 깎일 거라 생각했다. 복직 전, 하루 종일 혼자 아이를 돌보며 남편만을 기다렸던 내가 생각나서 그랬다. 그때의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고생했어."
내가 없는 힘을 쥐어짜 고생했다고 얘기하며 남편을 안은 순간, 삐죽 튀어나왔던 남편의 입이, 가라앉아있던 남편의 표정이 스르륵 풀렸다. 남편도 할 말이 많았을 텐데 ‘너도 고생했어’라고 화답해주었다. 예민함을 앞세워 모난 말이 나올 분위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공기가 달라졌다. 그때가 되면 그 말을 억지로 내뱉었던 나도 달라져있었다.
하기 싫어도 한 말의 힘을 체감하고 나자 나는 다른 것들을 시도해보았다. 내 몸과 마음이 너무 버겁고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을 때도 남편의 스킨십에 같이 반응했다. 손을 꼭 잡고, 뽀뽀를 하고, 포옹을 하고, 사랑을 나눴다. 남편이 너무 지쳤을 땐 퇴근길에 장을 봐서 남편이 좋아하는 두부김치를 만들었다. 다이어트 중에도 남편이 제안하면 밤에 치킨을 먹었다.
그 과정은 매우 지난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벽들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엔 힘들었던 일들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되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남편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됐다.
아이는 나 혼자 낳은 것도 아니고, 나 혼자 키우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함께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도 중요하다. 어쩌면 그 관계가 육아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건 기본이고, 가끔은 지친 사람을 대신해 그 사람의 몫까지 할 수 있다. 힘들어서 말 한마디 손 까딱하기 싫은 날에도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주는 게 그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는 표현이 인색해서 표현이 많은 남편이 가끔 섭섭하면 나를 ‘경상도 여자’라고 놀린다.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고생했다 한마디를 하기까지 각오까지 필요한 사람이었다.
표현하는 게 사랑이라고 한다. 그 표현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낄 수 있게 하는 데에 방점이 있다. 쉽지 않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 부모 손길이 더 필요 없어져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나도 그 빈자리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 더 단단해진 우리 둘로 만족하고 싶다. 오늘도 집에 돌아가면 얘기해야겠다. 고생했다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