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벤의 트럼펫>의 표지입니다. 흑백 모노톤의 컬러감이 인상적입니다. 앞표지를 먼저 볼까요? 얼핏 보면 트럼펫을 불고 있는 키 큰 성인 한 명이 보이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묘하게 겹쳐진 선이 보이면서 작은 아이도 함께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시 시피 어른은 트럼펫을 불고 있어요. 나란히 서있는 아이는 어떤가요? 거의 비슷한 몸의 각도로 서서 아이도 어른과 함께 무언가를 연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물론 아이의 손에는 악기 하나 없지만 몸짓만큼은 진지하네요. 제목대로 누가 '벤'일까요? 이제 뒤표지를 봅시다. 도시의 멋진 마천루의 실루엣이 보입니다. 그런데 건물들이 딛고 서있는 땅의 모양이 반원의 형태를 띠고 있어요.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을 그린 걸까요?
표지보기>
* 묘하게 겹쳐 서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는?
* 누가 벤일까요?
*반원 모양의 땅 위에 도시의 모습이 보입니다.
작가는 왜 이런 땅의 형태를 상상했을까요?
<벤의 트럼펫>, 비룡소 제공
회색의 도시 속 어지럽게 불이 켜진 마을 골목입니다. 페이지 한편 주인공 벤은 오늘도 비상계단에 앉아 동네 재즈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빠져 있습니다. 벤의 유일한 낙은 바로 이 라이브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비록 진짜 트럼펫 아니지만 상상의 트럼펫 연주에 심취하는 것입니다. 하굣길에도 꼭 재즈 클럽에 들려서 프로 연주자들의 멋진 모습도 구경합니다. 특히 벤은 여러 재즈 클럽의 악기 중에서 트럼펫을 좋아합니다. 당연히 트럼펫 연주가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지요.
트럼펫을 배울 형편이 되지 않아 손짓으로 마음 가득한 재즈 선율을 연주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아이가 바로 벤입니다. 벤은 어디서나 트럼펫을 연주합니다. 제 손에 트럼펫이 있는 양 입으로 빰빰빰~ 불어대는 벤 만의 선율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연주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지요. 엄마와 할머니 동생 앞에서 연주를 하지만 세상에 지친 모습만 보일 뿐 아무도 벤을 바라봐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벤은 꿋꿋합니다.
꿈을 잃지 않는 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요. 벤의 그런 순수한 열정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재즈클럽의 트럼펫 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벤의 상상 속 연주를 응원해 줬고, 의기소침해진 벤에게 먼저 손을 내밉니다. 가지고 있는 이의 아름다운 베풂의 순간입니다. 어떠한 대가 없이 누군가의 열정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마음보다 멋진 것은 없습니다. 벤은 트럼펫 연주자의 배려로 드디어 진짜 트럼펫을 손에 잡습니다.
그리고 연주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We'll see what we can do."
홀로 베푸는 것이 아닌
연주자는 '우리'라는 말로써
벤을 함께 하는 친구로 받아들입니다.
비로소 벤의 트럼펫은
그 첫 숨을 내뱉습니다.
<벤의 트럼펫>, 비룡소 제공
<벤의 트럼펫>, 비룡소 제공
<벤의 트럼펫>, 비룡소 제공
<벤의 트럼펫>, 비룡소 제공
그림책 <벤의 트럼펫>은 1979년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한데요. 출간된 지 40년이 훌쩍 넘는 그림책이지만 작가 레이첼 이사도라의 세련된 일러스트는 시각을 넘어선 청각까지 자극하는 감각의 판타지를 제공합니다. 재즈의 선율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마치 음표들을 분무기로 뿌린 듯한 표현으로 페이지를 채우고 있습니다.
작가 그린 재즈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연주와 그 안의 공기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듭니다. 책 속 지그재그 재즈 클럽 안에 실제 있는 듯합니다. 특히 재즈 선율의 음감을 자유로운 직선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독특한 작법은 그림책의 그림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또한 이 그림책의 주요 작화는 1910년에서 1930년까지 유행했던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당시의 분위기를 한껏 살립니다. 화려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장식보다는 직선과 대칭 등의 기하학적 무늬로 꾸며진 도시의 모습 이국적이면서 미적 심미안을 자극합니다. 아래의 이미지를 보면 그 당시 유행했던 아르데코 스타일을 확인해 보세요. 아르데코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모습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픽사의 애니메이션 <Soul>의 콘셉트아트 그림을 보면 주인공 연주자가 재즈 음악에 빠졌을 때의 선율의 느낌을 아르데코 스타일로 표현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 <벤의 트럼펫>에서 표현된 마천루의 그림들, 음악이 울려 퍼지는 분위기를 표현한 직선 그림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렇게 그림들을 비교하면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랍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로비 장식
Pixar-Disney Concept Art
재즈가 듣고 싶어 지네요. 그림책 <벤의 트럼펫>을 읽을 때는 꼭 재즈를 들으세요. 트럼펫소리가 읽는 이의 마음속에선명하게 들어올 겁니다. 벤이 멋진 트럼펫 연주자가 됐을 거라 상상하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