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퀴블러의 ‘인생수업’을 읽고
작년, 7월말 제주에 내려왔습니다. 남편의 전근으로 1년쯤 제주에 살게될 예정이었어요. 설렜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남쪽에서 제일 높은 산인 한라산이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한창 명상과 요가에 관심이 많던터라 자연과 가까운 제주살이가 설레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정말 제주는 기대했던 대로 명상과 요가를 하기에 터가 좋았습니다. 사실 기대 이상이었어요. 서울외 타 지역(기억없는 어릴 때 제외)살이는 처음이었는데, 저는 도시보다 적당히 자연인 곳이 맞나봐요. 저의 마음은 바다를 보며 산을 보며 자연의 드넓음과 이어질 수 있었어요. 심지어 집 앞 상가에서 하타요가의 대가가 운영하는 요가원을 다니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그리고 최근 6월 말쯤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어요.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하고 나니 그리 섭섭할 수가 없었어요. 매일 매일 아파트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한라산 자락과 저 멀리 보이는 바다(특히 수평선위에 펼쳐진 저녁노을)가 아쉬웠어요. 벌써부터 그리웠어요. 요가도 이제 쪼오끔.. 정말 쪼오끔.. 몸이 풀리려는데 다시 올라간다니.. 요가고수의 기회를 뺏겼단 생각도 들었어요. ㅎㅎ 남은 한달여간 ‘미친듯이(?) 수련해야하나’ 하는 비이성적인 조급함까지 몰려왔어요.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는가? 아침의 냄새를 맡아 본 것은 언제였는가?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또 언제였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인생수업, 책의 마지막 뒷표지 내용 중
꿈꾸던 제주 버킷리스트들…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나름 제주가 주는 제주만의 호사를 누렸지만, 큰 틀에선 제주의 일상은 서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일단 편의성때문에 제주 도심지에 살아서 거주지 자체의 느낌은 서울과 거의 같았지요. 그리고 서울에서보다 건강이 좋아지면서 몸은 더 바빴달까요? 매 순간이 도전이었기에 더 바빴던 것도 같아요. 도전1) 제주는 자차가 없으면 지척간에도 이동이 쉽지 않을 때가 많아서 20년 장롱면허를 꺼내들어야 했고, 도전2) 여태 해본 적 없는 명상 가이드 음원 만든다고 스튜디오를 오갔고, 도전3) 유투브를 만들기 시작했고, 도전4) 그동안 미뤄왔던 온/오프 캘리수업을 열게 되었어요. 또 도전5) 그동안은 명상을 주로 하는 라좌요가를 지양했다면 여기선 하타요가를 시작하며 요가고수(?)의 꿈을 꾸었어요. 이 외에도 등등
제주의 자연이 저에게 힘을 줬던 걸까요?
무튼 코로나여파도 심했고 일상도 바빠서 자연과 그렇게 가깝게 지내진 못했던 것 같아요. 바다보고 산에오르는 그 벅찬 가슴 느낄 여유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이상 씩은 느꼈으니 만족해야할까요? 후회는 없지만 다시 제주에 살 날이 있을까 생각하니 아쉬움에 입꼬리가 자동으로 시무룩해졌어요.
그래서 남은 시간 더 자주 하늘과 땅과 바다를 보러가려구요. 몰려오는 아쉬움과 조급한 마음으로 지금을 낭비하는 대신 어차피 가는거 남은 기간동안 제주만의 일상을 좀 더 즐겨보려고 해요. 장소리스트업해서 빨리 빨리 클리어하고.. 남은 시간동안 요가원 미친듯이 가고.. 이런 식 말고..
이곳에서 사랑하게 된 장소와 경험들 속에 좀 더 빠져보는 시간 가져보려구요. 빨리 빨리 말고, 한 순간 한 순간을 음미해서 좀 더 지그시 마음에 남겨보려구요. 일순간 조급해졌던 마음의 톤을 살짝 내려보았어요. 요가원 수련도 횟수채울 생각말고 갈 때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아로새겨보려고요. 아쉬움도 조급함도 없이 지금 이 순간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게 가장 남는거겠죠?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이다.
인생수업, p.10
제주에서 1년 .. 끝인것 같지만 어딘들 끝이 없을까요. 서울살이도 언제 또 끝이 날지 모르는 것이고 (어디에 살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외국으로 갈지 또 지방 어딘가로 갈지) 또 언젠가는 이 삶, 이 지구에서의 일상도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것이고요.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다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네요악착같이 욕망(?)을 해결하려하기보단, 지금 제게 주어진 삶의 기회에만 열중하렵니다. 인연이라면 또 오게 될듯요. 제주에.. 제 삶이 인도하는대로 ^^
ps. 이번주 명상가이드는 ‘불안명상’ 그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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